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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평식의 신 미국유람] 청계천 개발 모델 된 텍사스 최고 명소

연 2000만명 찾는 도심 강변 강변 따라 카페·선물점 즐비 마켓·미션 등 멕시코풍 가득 10분 거리엔 알라모 유적지 아인슈타인의 명언 중 필자가 마음에 깊이 각인시켜 놓은 명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한 번도 실패해 보지 않은 사람은 한 번도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지 않은 사람이다” 라는 구절이다. 미 전국의 새로운 곳만 찾아 구석구석 헤매다 보면 가는 곳마다 낯설고 처음 보는 곳 뿐이다. 수없이 길을 물어야 하고, 혹시라도 잘 못 들어가면 되돌아도 나와야 한다. 연속의 실패가 한두 번이 아니다. 텍사스 남부 도시 샌 안토니오에 있는 리버워크(San Antonio River Walk)도 그랬다. 이곳이 그렇게 유명하고 좋다고 해서 처음으로 찾아갈 때도 역시 아인슈타인의 명언대로 수 없는 실패를 맛봐야 했다. 그럼에도 결국 목적했던 곳에 도달했을 때의 환희는 경험해본 사람만 느끼는 기쁨이리라. 348Km길이의 샌 안토니오강은 텍사스주의 젖줄이라고 한다. 하지만 툭하면 범람해 피해가 막심했다. 시 상공회의소는 그럴 바에야 차라리 매립을 하자고 했다. 여성단체들은 그래도 보전을 해야 한다고 맞섰다. 그렇게 양측 주장이 팽팽한 가운데 20년이나 세월이 흘러갔다. 그러던 중 이 지역 건축가였던 허그맨 이라는 사람이 여성 단체들의 구상을 채택, 운하를 만들어 물길을 새로 잡아주면서 강 양쪽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는 대박은 그렇게 탄생하게 됐다. 남자들 바지 폭보다는 여자들 치마폭이 더 넓다는 말은 그래서 나왔던가. 지금 샌 안토니오 리버 워크는 매년 관광객이 2000만명이 넘고 고용효과도 10만명 이상이라 한다. 지역 경제에 이런 효자가 또 어디 있을까 싶다. 범람이 두려워 그냥 강을 메우고 말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강 양쪽으로 빈틈없이 들어차 있는 음식점과 선물점, 호텔 등 각종 비지니스들은 코로나 팬데믹 와중에도 번창일로에 있다고 한다. 필자가 갔을 때도 강물 위로 유유히 노니는 청둥오리들을 바라보며 연인끼리 팔짱을 끼고 강변 따라 유유자적 걷는 모습들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어 보였다. 강물 따라 쉴 새 없이 오가는 보트는 언제나 만선이며 양쪽 강가로 걷는 인파 또한 완전 시장 골목이다. 가게 앞 의자에 앉아 음식과 술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지. 걷다가 다리 아프면 의자에 잠시 앉아 칵테일 한 잔 음미하는 맛도 새로울 뿐더러 판초 모자들을 쓰고 기타를 치며 연주하는 경쾌한 스페니시 음악까지 감상할 수 있는 분위기는 다른 곳에서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풍광이다. 1937년 창설된 시 강변개발국은 샌 안토니오 도심을 중심으로 리버워크를 북쪽으로 13Km, 남쪽으로 6Km더 연장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강변 개발로 그동안 톡톡히 재미를 봤을 뿐아니라 고용 효과도 커지니 손 안대고 한 번 더 코 풀어보자는 속셈이 아닐까 싶다. 우리 속담에도 ‘중이 고기 맛을 알면 절간에 빈대도 남아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샌 안토니오 리버워크에서 도보로 10여분 거리에는 유명한 알라모(Alamo) 유적지가 있다. 1836년 186명의 민병대가 멕시코 정부군 1000여명의 공격을 받아 13일간 전투 끝에 단 두 사람만 살고 나머지는 모두 전사한 곳이다. 이후 ‘알라모를 잊지 말자’를 구호로 텍사스 주민들은 멕시코 정부군의 잔인함에 알라모 전투를 되뇌이며 많은 사람들이 자진 입대하여 샌하신토 전투에서 온갖 열세에도 불구하고 승리하면서 멕시코군을 몰아냈다. 알라모에서 남쪽으로 약 2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750피트 높이의 타워 아메리카도 가 볼만 하다. 이곳에 오르면 샌안토니오 시가지가 360도 다 보인다. # 여행메모 텍사스는 알래스카 다음으로 면적이 넓은 주다. 주도는 오스틴. 샌안토니오는 휴스턴에 이어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다. 마켓이나 미션 등에선 멕시코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다. 댈러스에서 약 5시간, 오스틴에서 약 2시간 거리. 앞서 언급한 리버 워크, 알라모, 타워 아메리카는 샌안토니오 방문 시 꼭 봐야 할 명소들이다. 리버 워크는 서울 청계천 개발의 모델이 된 곳이기도 하다. 김평식·여행등산 전문가

2021-10-11

성큼성큼 우주 향한 인류의 위대한 발걸음…휴스턴 NASA 존슨 우주센터

현대 과학 발전 총 집결지 미국의 자부심 확인 현장 우주선 내부도 볼 수 있고 달 착륙 과정 등 생생 재현 과연 인간의 두뇌는 어디까지 이 세상을 발전시킬 것인가? 텍사스 휴스턴에 있는 나사 존슨 우주센터(NASA Johnson Space Center)를 방문한 뒤 가져 본 의문이다. 이미 50여년 전에 달에 인간을 착륙시킨 NASA인데 반 세기나 흐른 지금까지 또 얼마나 많은 과학 발전이 있었을까. 하기야 지금은 달이 아니라 화성까지 갔다 오는 세상이 되었으니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현대 사회에서 50년이라는 세월 동안 과학이 밝혀낸 비밀은 상상 그 이상이리라. NASA는 미국 과학발전의 상징 같은 곳으로 항공우주 기술부, 우주과학 응용부, 우주 비행부, 우주 추적 자료부, 우주 정거장부로 구성된 우주개발 연구의 총 본산이다. 본부는 워싱턴DC 에 있고 플로리다의 케이프 카나버럴(Cape Canaveral) 발사기지를 비롯해 미국 내 17곳에 분과 시설과 외국 여러 나라에 40개소의 추적 및 관측소들이 산재해 있다. 미국은 구 소련보다 1년이나 늦게 우주탐험을 시작했지만 60년대 말까지는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겠다는 당시 케네디 대통령의 집념에 힘 입어 1969년 7월 16일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달 표면에 인간을 착륙시켰다. 그야말로 인류 역사를 바꾸어 놓은 쾌거였다. 하지만 정작 케네디 대통령은 1961년 5월25일 일찌감치 유명을 달리했으니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 종교계에선 창조론을 주장하지만 이곳 휴스턴 우주센터에 와 보면 과연 인류가 어디까지 진화되어 나갈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곳의 모든 것이 새롭고 또 처음 보는 것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단연 새턴 V로켓 엔진이었다. 새턴 5호 로켓은 5개의 추진 F-1 엔진으로 구성된, 지구상에서는 가장 큰 엔진이다. 이 5개 엔진에서 분사되는 힘으로 120톤 무게의 우주선을 불과 3분 안에 40여 마일까지 띄워 올린다. 뿐만 아니라 거기서부터는 마하 8에 가까운 속도로 시간당 6000마일씩 비행을 시킨다고 하는데 그저 감탄과 탄성만 나올 뿐이다. 우주선도 직접 볼 수 있는데 실내 공간은 대략 2000스퀘어피트 넓이로 2베드룸 아파트 크기로 생각보다 꽤나 넓어 보인다. 그 속은 무중력 상태이기 때문에 모든 음식과 도구는 제멋대로 날아 다니지 못하도록 서랍 속에 잠금 장치로 보관되어 있다. 우주선 안에서 비행사들은 비닐 자루 속에 들어가 샤워를 하는데 물기는 전부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인다. 필자는 약 30여년 전 플로리다의 케네디 우주센터에도 들어가 보았는데 우주선 발사 장면은 보지 못 했지만 지금도 생생한 기억이 하나 있다. 사방 1피트 반 정도 되는 흡사 모판 비슷한 상자 안에 채소를 재배하는 장면이었는데 우주에서 1년 내내 비행사가 자급 자족할 수 있는 농사라는 것이었다. 우주선이 플로리다의 케네디 우주 센터에서 성공적으로 발사된 뒤부터 모든 관제 임무는 이곳 휴스턴 존슨 우주센터에서 담당한다. 1969년 아폴로 11호가 발사되었을 때 당시우주선을 관제한 통제실, 공장 및 실험실들, 우주 정거장도 이곳에서 볼 수가 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40개소 추적소와 우주 조종사들과의 교신을 하는 관제실 안을 유리벽을 통해 들여다 보는 것만으로도 우주 시대에 동참하는 듯한 벅찬 심정이 된다. 가끔 TV에서 지구를 선회하는 우주선과 교신을 하며 두 팔을 번쩍 들고 성공을 자축하던 장면을 보곤 했던 바로 그 장소이기 때문이다. #여행메모 NASA 휴스턴 우주센터는 텍사스 여행 시 꼭 둘러볼 만한 곳이다. 볼거리, 즐길 거리가 넘쳐 누구나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어린이들에게는 무한대로 꿈을 키워준다는 점에서 특히 유익한 공상 과학 실습장이다. 효과적인 관람을 위해서는 입장료에 포함되어 있는 1시간 짜리 트램을 타고 다니며 설명을 듣는 것이 좋다. 주소는 2101 E. NASA Pkwy. Houston, TX 77058 ▶김평식 여행 등산 전문가. 1940년생. 꾸준히 여행칼럼을 집필했으며 ‘미국 50개주 최고봉에 서다’ ‘여기가 진짜 미국이다’ 등의 저서가 있다. 연락처= 213-736-9090 김평식 / 여행등산 전문가

2021-10-03

[김평식 신 미국유람] 누가, 왜 젊은 대통령을 쐈을까 ‘미스터리’

범인도 죽고 증인도 죽고 희대의 사건 58년째 미궁 허름한 건물 6층 현장은 댈러스 최고 명소로 붐벼 1963년 11월 22일 12시 30분. 경천동지의 순간이다. 세계 최강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한 저격범의 총에 맞았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벌건 대낮에, 그것도 정보와 수사 과학이 최고라는 미국의 대도시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에 세계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격범은 오스왈드. 그는 댈러스 다운타운에 있는 국정교과서 보관창고의 허름한 건물 6층 유리 창문을 통해 케네디 대통령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1964년 대선을 앞두고 텍사스를 방문한 케네디는 오픈카로 도심 퍼레이드를 하던 중 오스왈드가 쏜 흉탄에 맞았다. 범인이 손 첫 총알은 대통령의 뒷목을 관통했다. 대통령의 머리가 앞으로 숙여지는 순간 우측 전면으로 또 한 발의 총탄이 날아왔다. 두 번째 총알은 얼굴에 명중,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는 처참한 형국이 되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이 아닌 앞 뒤에서 누군가 동시에 저격을 한 상황이었다.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수많은 시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손을 들어 답례하던 젊은 대통령은 생로병사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하고 한 순간에 유명을 달리했다. 총격 직후 오스왈드는 1마일 정도 도주하다가 순찰 경관의 정지 신호를 받았으나 가슴에 숨기고 있던 리볼버 권총으로 경관마저 살해했다. 이후 오후 2시 경 한 시민의 제보로 오스왈드는 체포되었다. 하지만 이틀 뒤인 11월 24일 경찰서 지하에서 오스왈드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살해되고 말았다. 사건은 이렇게 온통 의문 투성이다. 전면에서 안면에 저격을 가한 범인은 아직까지도 잡히지 않고 있다. 오스왈드의 증인도 밝은 대낮 도로 상에서 살해되었다. 이렇게 사건은 의문의 꼬리를 물면서 58년째 미궁의 늪에 빠져 있다. 이 사건은 오스왈드의 단독범행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조직적인 범죄 조직의 범행이라는 주장도 수그러들지 않는다. 여태 진범은 잡히지 않고 있는 만큼 당시 케네디 대통령의 정책 노선에 반대하는 군부와 남부의 이익집단이 만들어 낸 쿠데타적 사건이라는 주장도 있다. 또 하나 당시 부통령이던 존슨과 케네디와의 관계가 아주 안 좋았다는데 왜 하필이면 존슨의 고향인 텍사스에 와서 암살을 당했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정확한 진실은 아무도 모른 채 억측만 구구한 미제 사건으로 남고 말았다. 지금도 케네디가 저격 당한 대로상에는는 흰 페인트로 ‘ X’자 표시가 선명하게 칠해져 있다. 여행객들은 그곳에서 차가 오지 않는 틈을 이용하여 도로 가운데로 들어가 기념사진 찍기에 바쁘다. 오스왈드가 총을 쐈던 교과서 창고 빌딩 6층 빌딩은 케네디 뮤지엄이라는 일종의 추모관이 차려져 있다. 추모관은 6층에 있다고 해서 ‘6층(6th Floor)’이 곧 이름이 됐다. 이곳에는 케네디 재임 시 사진과 영상과 육성 등 관련 기록과 자료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고 총격을 가한 코너 유리창은 유리벽으로 막아 통제하고 있다. 6층 뮤지엄을 둘러보고 계단을 내려오면서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한 날이 허구한 날 중에 하필이면 필자의 생일과 같은 날이구나 싶어 우연이라지만 기분이 묘했다. 뮤지엄 건물 앞에는 하루 네 번, 1시간 정도씩 시내를 도는 투어 버스가 출발한다. 이 버스는 시내를 한 바퀴 돌며 오스왈드가 살았던 집과 증인들이 대낮에 살해당한 장소들까지 두루 보여 준다. 워싱턴 DC 알링턴 국립묘지에 가면 케네디 대통령 묘가 있고 그 앞에는 항상 불꽃이 피어 오르고 있다. 그의 업적이 영원 무궁하라는 뜻이라지만 그보다는40대 초반의 패기 만만한 젊은 대통령을 잃은 미국인들의 상실감이 그만큼 더 컸던 게 아닐까 싶다. #여행 메모 텍사스 댈러스는 ‘오일머니’로 부흥한 도시다. 엑손 모빌을 비롯한 수많은 에너지 기업 본사가 있다. 애틀랜타와 함께 미국에서 한인 인구가 급증하는 대표적 도시로 한인 인구가 10만이 넘는다. 케네디 대통령 추모관이 있는 옛 국정교과서 건물(딜리 플라자)은 댈러스의 최고 명소가 됐다. 박물관 주소는 411 Elm St. Dallas. 김평식·여행등산 전문가

2021-09-26

[김평식 신 미국유람] 지구상에 하나밖에 없는 움직이는 산

만년 전 LA인근서 출발 매년 1~2인치 북으로 이동 2013년 국립공원으로 지정 아기자기 하이킹 재미 가득 그 동안 동부, 중부 지역을 주로 소개했는데 이번엔 조금 눈을 돌려 멀리 캘리포니아의 신생 국립공원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이 세상에는 불가사의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오늘 얘기하려는 곳도 바로 그런 곳이다. ‘움직이는 산’이라 불리는 마운틴 피너클스(Mt. Pinnacles)다. 산이 움직인다니? 조그마한 집이 깔고 앉은 앞 마당도 움직이질 않는데 어마어마한 산 덩어리 전체가 움직인다니 거짓말치고는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는데 어찌하랴. 그것도 조금만 움직이고 만다거나 한 두번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진행형이라면 더 더욱 믿어지겠는가. 그러나 생태 지질학자들이나 고고학자들의 오랜 연구 결과 LA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산이 매년 조금씩 움직여 현재는 샌호세 근방까지 올라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한다. 실제로 이곳 방문자 센터에 가 보면 산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설명한 학자들의 연구 결과와 수많은 관련 자료들이 벽에 붙어있다. 이 산을 연구한 학자들의 일치된 결론은 2300만년 전에 LA 북쪽 5번 프리웨이와 138번 도로가 만나는 골만(Gorman)근처 땅속에서 치솟은 붉은 용암 산이 매년 1~2인치씩 북쪽으로 서서히 움직여 갔다는 것이고 그 이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수천 만년 동안 그렇게 움직여 올라간 거리가 자그만치 190여 마일이란다. 우리 당대에는 이동 거리를 실감하긴 어렵겠지만 분명히 산이 움직이는 것은 맞다고 하니 참으로 이해를 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그렇게 오랜 세월 올라가는 동안 침식작용으로 산의 제일 높은 봉우리는 채 3000피트를 넘지 않는다. 하지만 정상의 용암 덩어리 바위들은 서로 각기 다른 모습으로 여전히 장관을 이룬다. 그 풍광 때문에 원래 준국립공원(National Monument)으로 지정되어 있었는데 2013년도에 국립공원으로 승격이 됐다. 국립공원 전체 면적은 불과 20 평방스퀘어마일 정도로 그리 크진 않지만 유연한 능선과 푸른 초원, 기묘한 봉우리들이 어우러져 전혀 다른 돌연변이의 집합체인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방문객들을 위한 배려도 대단하다. 하이커들의 천국이라 할 만큼 등산로(트레일)가 다양할 뿐아니라 인공 터널에 높은 산을 넘어가는 교량까지 설치해 험준한 등산로를 연결해 놓는 등 온갖 정성을 들인 성의가 대단해 보인다. 특히 왕복 1마일 남짓의 발코니 케이브( Balconies Cave) 트레일을 걸으면 암벽 사이로 자연 동굴을 지나지 않을 수 없어 진땀을 흘리게 한다. 이 자연 동굴 안으로 들어가 보면 옆에서 코를 떼어가도 모를 정도로 캄캄한 암흑세계로 손 전등이나 헤드라이트는 필수인데 인디애나 존스 영화의 한 장면 속을 걸어가는 듯한 색다른 체험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이다. 피너클스 국립공원을 제대로 즐기려면 직접 걸어보는 것이 좋은데 체력이 허락한다면 동쪽 입구에서 시작하는 올드 피너클스트레일(Old Pinnacles Trail)에서 시작해 자연 동굴을 거쳐 주니퍼 캐년(Juniper Canyon Trail)로 정상까지 돌아 나오는 약 8마일의 코스를 권한다. 산을 오를 때 계곡 속 붉은 암석들의 풍광들도 일품이지만 정상에 올라 360도 사방을 내려다 보면 용암 봉우리들의 향연도 형형각색이어서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다. 특히 남근석과 흡사한 바위 앞에 서면 어쩌면 저리도 정교하게 만들었을까 감탄하며 살피느라 다들 서 있는 시간들이 길어지는 걸 보면 사람들의 관심사는 다 비슷한 듯 싶다. # 여행메모 마운틴 피너클스 국립공원은 146번 도로를 이용하는데 입구는 101번 프리웨이 302번 출구에서 들어가는 서쪽과 25번 선상에서 들어가는 동쪽 입구 2개가 있다. 피너클스 국립공원을 찾아간다면 하루나 이틀 숙박하면서 중가주 일대 와이너리나 살리나스나 몬트레이 등 중가주 일대 인접 도시도 함께 둘러보는 것도 좋다. 미국 최고의 드라이브코스로 불리는 빅서 일대 태평양 해안 1번 도로를 달려보는 것도 빼놓지 마시길. 김평식 / 여행 등산 전문가

2021-09-17

[김평식의 신 미국유람] 서부 개척 물꼬 튼 대탐험 역사 한눈에 그대로

1804~06년 루이스&클라크 위대한 탐험 생생히 재현 게이트웨이 아치 관광 전후 세인트루이스 필수 방문지 미주리주 세인트 루이스는 미시시피강 서쪽에 있다. 미국의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1803년, 이곳을 포함해 루이지애나에서 캐나다 국경에 이르는 광대한 땅을 불과 1500만달러만 주고 프랑스로부터 사들였다. 이로써 미국은 영토가 갑자기 두 배나 늘어났다. 이를 미국 역사에선 ‘루이지애나 매입’이라 부른다. 당시 매입한 땅은 지금의 루이지애나, 아칸소, 오클라호마, 미주리, 캔자스, 와이오밍, 내브래스카, 몬태나 등을 포함한 미 중부 내륙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그 땅이 얼마나 넓은지는 사들인 제퍼슨도, 팔아 치운 나폴레옹도 알지 못했다. 제퍼슨 대통령은 루이지애나 매입 후 이 지역을 탐사를 결심했다. 이를 위해 제퍼슨은 대위 출신 매리웨더 루이스와 소위 출신 윌리엄 클라크를 불러 서부 대륙을 가로 지르는 대탐사 임무를 부여했다. 이것이 1804년부터 2년 반에 걸쳐 진행된 그 유명한 루이스&클라크 탐험이다. 당시 미시시피강 서쪽에는 원주민 인디언들만 군데 군데 살고 있었지 주인도 없는, 말뚝만 박아 놓으면 내 땅이 되는 시절이었다. 하기야 시애틀 앞 바다 프라이데이 섬처럼 오랜 옛날 유럽 군함들이 상륙해 말뚝을 밖아 놓은 것이 지금도 유효하여 철조망으로 출입을 제한하고 있는 곳도 있긴 하다. 루이스와 클라크 두 사람은 제퍼슨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미 대륙을 가로질러 태평양 연안까지 탐험하며 서부로 향하는 경로를 개척했다. 이들은 출발 전 먼저40여명의 젊은 탐사대원을 모집해 일정 기간 혹독한 훈련을 시켰다. 통나무 배 만드는 법, 맹수나 사나운 동물을 만났을 때 대처법, 급류 타는 방법, 원주민들과의 수화 또는 대화법, 응급 처치법 등을 몇 달 동안 훈련시킨 뒤 1804년 5월 14일 세 척의 통나무 배에 나누어 타고 세인트루이스에서 역사적인 출발을 한 것이다. 탐사대는 미시시피강을 따라 올라가다 미주리 강으로 바꾸어 타고 캔자스, 네브래스카, 노스다코다, 사우스 다코다를 거쳐 몬태나, 아이다호, 오리건 주의 태평양 연안까지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나아갔다. 몇 번이나 배가 뒤집혀 장비와 식량이 전부 떠내려가고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로키산맥을 넘으면서는 추위와 폭설에 갇혀 길을 잃고 식량도 떨어져 죽음 직전까지갔다. 인디언 중에서도 제일 용맹하기로 소문난 수족을 만나 전멸 일보 직전에서 원주민 추장 딸의 도움으로 간신히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다. 온갖 역경를 이겨내며 탐험대가 최종 도착한 곳은 콜롬비아 강 하류의 태평양 연안 도시 아스토리아였다. 지금 그곳 바닷가 해송 밭에는 조그마한 루이스 앤 크락크 뮤지엄이 세워져 있다. 필자도 그곳을 가 보았는데 2베드룸 정도 되는 넓이에 통나무배 1척을 비롯해 탐사대원들이 입었던 의복과 식기류, 물통 등 탐험 장비와 물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탐험대가 출발하고 돌아온 세인트루이스에는 당연히 그들의 위대한 업적을 기린 기념관이 세워졌는데 그게 바로 게이트웨이 아치 지하에 있는 제퍼슨 영토 확장 기념관(Jefferson National Expansion Memorial) 이다. 이곳엔 1803년 루이지애나 매입부터 1890년 서부개척 종료 때까지의 역사와 기념물들이 수집, 전시되어 있다. 특히 루이스&클라크 탐험 당시 원주민들의 생활상은 물론 그들의 탐험 경로, 조사 내용 등은 어린 자녀들을 위한 훌륭한 교육자료로도 훌륭하다. 참고로 루이스와 클라크 두 사람의 업적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이곳 말고도 오리건주 포틀랜드를 방문해 보면 금방 알수 있다. 그곳 대학교나 식당, 호텔 심지어 주유소 이름에도 루이스&클라크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 여행 메모 토머스 제퍼슨(1743~1826)은 미국 제 3대 대통령이자 미국 독립선언서 기초자로 2달러 지폐 모델이 되어 있다. 워싱턴DC에 그의 기념관이 있고 이곳 세인트루이스에도 그의 이름을 딴 영토 확장 기념관이 세워졌다. 50분 짜리 아이맥스 영화를 보면 자세한 탐사과정을 더 생생히 볼 수 있다. ▶김평식 여행 등산 전문가. 꾸준히 여행칼럼을 집필했으며 ‘미국 50개주 최고봉에 서다’ ‘여기가 진짜 미국이다’ 등의 저서가 있다. 연락처= 213-736-9090 김평식 / 여행등산 전문가

2021-09-12

[김평식의 신 미국유람]‘노예 해방’ 논란 불 지른 역사적 재판 현장

미주리주 세인트 루이스 방문 기회가 생긴다면 지난 주 얘기한 게이트웨이 아치 외에 코트하우스(Old Court House)도 꼭 둘러보기를 권한다. 다운타운에 있는 이 법원 건물은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기도 하지만 미국 역사에 길이 남을 유명한 재판이 이뤄진 현장이기 때문이다. 유명한 재판이란 ‘드레드 스콧’ 재판을 말한다. 드레드 스콧(Dred Scott, 1795~ 1858)은 흑인 노예로 1846년 주인이 죽자 주인의 미망인으로부터 해방을 요구하며 법원에 제소하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다. 당시 노예는 소유주의 개인 재산으로 헌법에 의해 철저히 그리고 절대적으로 보호를 받고 있었다. 옛날 한국도 농가의 재산목록 1호였던 소 한 마리를 우시장에서 서로 사고 팔던 것과 마찬가지로 노예도 사 들여 오면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니고 언제나 몸종처럼 마음대로 사역을 시킬 수 있었고, 필요가 없어지면 내다 팔면 되는 사유 재산이었다. 따라서 어떤 노예주도 쉽게 노예를 그냥 해방시켜 주지는 않았다. 스콧의 노예해방 요구는 그런 재산권을 포기하라는 것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에 십 수년간 재판이 진행되면서 전국적인 관심과 논란을 불러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결과는 스콧의 패배였다. 처음 소송을 제기하고 10년도 더 지난1857년, 당시 로저 테니 연방대법원장이 “노예는 미국 시민이 아니므로 연방 법원에 소송할 권리도 없다”는 유명한 판결문으로 최종 판결을 내린 것이다. 말하자면 흑인은 사람이 아니라 가축이나 동물로 취급한 것인데 참고로 로저 테니 대법원장 역시 노예를 소유하고 있던 노예주였다. 연방대법원의 이 판결은 남북전쟁 후 수정헌법 14조 통과로 무효가 됐으나 미국 연방대법원 역사상 최악의 판결로 지금도 회자된다. 그리고 당시 링컨은 드레드 스콧 재판의 비도덕성을 공격해 전국적인 논객으로 부상했고 그 여세를 몰아 1860년 대통령으로까지 당선됐다. 이 판결은 남북전쟁을 앞당기게 한 단초를 만들기도 했는데 북부에서는 흑인 노예 해방을, 남부에서는 극구 반대하는 상황에서 남북 대결을 결정적으로 악화시킨 도화선이 됐다. 작은 쥐 구멍 하나가 큰 댐을 무너뜨린다고 무슨 사건이든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일이 나중에는 속수무책이 되는 경험을 어디 한두 번 보았던가. 원래 드레드 스콧은 버지니아에서 출생해 군의관인 존 에머슨의 노예로 이곳 미주리주로 팔려왔다. 이후 1834년 주인을 따라 일리노이주로 이주하였고 1836년 위스콘신주로 다시 이주했는데 그곳에서 주인의 허락으로 결혼도 했다. 그 후 1838년 주인을 따라 가족과 함께 다시 미주리주로 귀향했다가 주인인 애머슨이 죽자 노예 폐지를 주장하는 변호사의 회유에 애머슨의 미망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며 자유를 요구하게 된 것이다. 드레드 스콧 재판은 지지부진 시간을 끌다가 1857년에야 종결됐다. 하지만 정작 소송 당사자인 스콧은 혹독하고 힘든 노예생활을 이겨내지 못하고 최종 판결 1년 전에 죽고 말았다. 당시 최초 소송이 진행된 이곳 코트하우스 건물 앞에는 드레드 스콧 부부의 동상이 서 있는데 이를 보면 흑인들의 힘겨웠던 노예해방 과정을 생각하니 저절로 숙연한 마음이 든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최초 재판이 열렸던 4호 법정이 있는데 이곳도 마찬가지다. 일반 법정과 별로 다를 바는 없지만 자유인이 되기를 몸부림치며 열망했던 드레드 스콧의 환영이 보이는 듯 해서다. 지금 아시안들이 그나마 덜 차별받고 미국에서 당당히 살 수 있는 것도 드레드 스콧 같은 이들의 고투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곳에 올 때마다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되는 것도 그래서다. #여행 메모 지난 주 소개한 게이트웨이 아치에 올라 서쪽 창으로 내려다보면 코트하우스의 고풍스럽고 웅장한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세인트루이스에는 그밖에도 명문 야구팀 카디널스 홈 구장 부쉬스타디움, 풋볼팀 램스의 홈구장 에드워드 존스돔도 가볼만한 명물이다.

2021-09-06

[김평식의 신 미국유람] 미 중부 최대 건축물..서부 개척 관문 상징

미국 지도상 거의 중앙에 위치해 있는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St. Louis)에는 이 주를 대표하는 상징물이 하나 있다. 바로 게이트웨이 아치(Gateway Arch)다. 높이가 630피트(192m)로 이 일대 인공 조형물로는 가장 높기 때문에 세인트 루이스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1963년 2월12일부터 공사를 시작해 2년 반만인 1965년 10월 28일에 완공됐다. 게이트웨이 아치는 이 도시의 명물이자 자존심이다. 미국 역사나 영화에도 자주 나오고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에서도 묘사되었듯이 경제 대공황으로 인해 생업을 포기한 수많은 동부 사람들이 서부로 물밀 듯 몰려갈 때가 있었다. 그 당시 프리웨이가 없을 때 시카고에서 출발해 LA 샌타모니카 태평양 바닷가까지 이어지는 옛날 미국 대륙횡단의 대동맥 66번 도로도 바로 이 게이트웨이 아치 관문을 지나간다. 이 건축물은 핀란드 이민자였던 이이로 사리넨이라는 건축가가 설계했다. 높이 630피트 기둥 양쪽 간 거리도 똑같이 630피트여서 더욱 아름답고 균형미가 있다. 게이트웨이 아치는 삼각형 모양의 기둥인데 위로 올라갈수록 아치의 굵기가 점점 좁아지며 마치 무지개 모양으로 휘어져 있는데 3면이 모두 스테인레스로 용접하여 깨끗하게 마무리 되었다. 스테인리스로 시공한 이유는 인장 강도와 부식에 대한 저항성, 그리고 미관의 화려함 때문이었다고 한다. 골조는 철근과 시멘트로 건축되었는데 가장 높은 지점에 기중기를 올려놓고 무거운 건축 자재들을 들어 올렸으며, 8부 능선 밑으로는 양쪽 기둥으로 그네처럼 난간을 설치해서 사람들이 작업을 하게 했다. 말이 630피트지 의지할 것 없는 50층 높이의 허공에 매달려 공사를 했으니 그야말로 난공사였을 것이다. 마치 공중에 떠서 제비집을 세우는 격이었다고나 할까. 기둥 골조 속으로 운행되는, 우주시대에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캡슐열차(Tram)도 신기하다. 대부분의 건물은 수직이어서 엘리베이트가 오르내리는데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 건축물은 아치 모양이기 때문에 어떻게 사람을 태워 오르내릴 수 있게 했는지 궁금했는데 직접 타 보고서야 그 의문이 풀렸다. 마치 스키장 리프트처럼 박스처럼 생긴 한 칸에 5명씩 탈 수 있는 트램 8개가 한 번에 전동차처럼 운행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 칸마다 양쪽으로 롤러가 있어 곡선으로 휘어 올라가도 사람들이 앉아있는 의자는 수평을 유지할 수가 있다고 한다. 트램을 타고 정상까지 올라가는 시간은 4분, 내려오는 시간은 3분이다. 제일 꼭대기에는 동시에 160명까지 머물 수 있으며 1,076계단으로 된 비상계단도 있다. 트램을 타고 오르내리는 관광객은 연중 60여만 명이나 된단다. 아치 꼭대기에 올라 내려다보면 대형 유리창 너머 동쪽으로는 그 유명한 미시시피강이 내려다 보인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미국 대륙 한 가운데서 도도히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보자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힌다. 남자가 태어나 딱 세 번 눈물을 흘린다는데 이곳에서 새삼 눈시울이 붉어지는 건 그만큼 북받치는 감동이 컸다는 얘기리라. 다시 서쪽을 내려다보니 세인트루이스 코트하우스를 비롯해 추신수 선수가 한동안 소속되었던 카디널스 야구장 등 도시 중심가 속살이 다 보인다. 그렇지만 이 특이한 구조물 꼭대기에서 천길 만길 아래를 내려다 보자니 담력이 약한 편은 아닌데도 공연히 오금이 저린다. 나만 그런가 했더니 미국 대통령도 이곳에는 오르질 못한다는 불문율이 있다는데 그 이유가 오금 저린 경호원들이 경호를 잘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해서다. 물론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고 믿거나 말거나는 자유다. ▶여행 메모 세인트루이스는 일리노이 접경의 미주리주 최대 도시로 미시시피강과 미주리강 합류점에 위치한다. 서부개척 시대 서부로 향하는 관문 역할을 한다 해서 게이트웨이 시티라는 별칭을 가졌다. 1965년 완공된 게이트웨이 아치는 그런 관문의 상징이다. 아치 지하에는 서부 영토 확장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관이 있다. ▶김평식 여행 등산 전문가. 꾸준히 여행칼럼을 집필했으며 ‘미국 50개주 최고봉에 서다’ ‘여기가 진짜 미국이다’ 등의 저서가 있다. 연락처= 213-736-9090 김평식 / 여행 등산 전문가

2021-08-29

[김평식의 신 미국유람] 끝없이 펼쳐진 늪과 풀밭…"속이 뻥~ 뚫려요"

플로리다는 한국의 한 배 반이나 되는 광활한 땅이다. 그럼에도 가장 높은 산의 높이가 고작 345피트(105 m)에 불과하다. 아무리 다녀 봐도 언덕배기 하나 없는 지평선이나 수평선 뿐이다.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 늪지대도 마찬가지다. 고여있는 물이 웅덩이 물인지 흐르는 물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경사가 없다. 물 아래로는 진흙이 깔려 있어 무성한 갈대 숲을 이룬다. 진흙 아래로는 라임스톤이라는 석회석이 깔려있어 물이 땅 속으로 스며 들지 않아 악어를 비롯해 수많은 철새들이 살기에 천혜의 환경이다. 이 지역이 700여 종류의 동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가 된 이유다. 샤크밸리(Shark Valley)는 마이애미에서 41번 하이웨이 북쪽으로 약 50여 마일 거리에 있다. 이곳이 공원이 된 유래가 재미있다. 원래 이 지역은 액슨 모빌 등 세계적인 석유회사들이 혹시나 기름이 나오지 않을까 하고 엄청 넓은 늪지대 전체를 매입해 시추를 했는데 기름은커녕 오일 냄새조차 없는 땅으로 밝혀졌다. 나중에는 땅을 팔려고 해도 물 속에 있는 늪지대라 사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자 1947년 어쩔 수 없이 늪지대 전체를 정부에 기증을 했다고 한다. 국립공원 안으로 들어가려면 소정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트램을 타려면 따로 또 표를 끊어야 한다. 2021년 현재 어른 1인당 28불(62세 이상 시니어는 22불)이다. 트램을 타면 2시간에 걸쳐 왕복 14마일을 돌면서 안내자의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트램을 타고 가다 보면 차도 위에서 태연히 낮잠을 즐기는 악어들이 있는가 하면 학의 무리도 볼 수 있다. 또 1000년을 산다는 거북이들도 볼 수 있다. 천년 거북이 사는 곳이라 생각하니 여기야말로 지구촌 최고의 장수촌이 아닌가 싶다. 이곳 악어는 무슨 생각들을 하는지 자동차가 코앞까지 다가와도 집주인 행세를 톡톡히 하듯 꿈쩍도 안 한다. 또 물 속에 몸을 담그고 두 눈만 내놓고 조용히 떠 있는 모습도 신기하다. 악어는 동물 중 유일하게 혀가 없어 먹이를 끊어 먹을 수 없어 통째로 삼키는 동물이라 한다. 이곳 거북이들은 등짝이 정말로 솥뚜껑 만큼 큰데 악어가 그 큰 거북이를 물고 통째로 삼키지를 못해 끙끙대는 모습은 참으로 진풍경이다. 지난 1992년 8월24일 시속 165마일 가공할 만한 위력의 허리케인 앤드류가 이곳을 휩쓸고 지나가면서 7만 에이커에 달하는 공원 안의 맹그로브 나무가 뿌리째 뽑혀 나가고 공원 전체가 황폐화 되었다. 그런데도 악어들은 살아남았다고 한다. 엄동설한 겨우내 동굴 속에서 식음을 전폐하며 제 발바닥만 핥으며 산다는 곰처럼 악아도 6개월이나 아무것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다고 하니 그 생명력이 실로 놀랍다. 트램을 타고 공원을 한 바퀴 돌면서 각종 날짐승, 들짐승, 물짐승을 보고 중간 전망대에 올라보면 석양 노을에 제 집을 찾아가느라 분주한 각종 새들이 장관이다. 사진 작가들이 이곳에 오면 많은 작품을 만들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얀 백로가 뱀을 물고 하늘로 치솟는 장면이라든지 악어가 솥뚜껑만한 거북이를 물고 씨름하는 장면을 잘만 찍어 놓으면 백만불짜리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눈을 씻고 봐도 상어라고는 한 마리도 볼 수 없고 악어만 우글거리는데 왜 이곳을 샤크밸리(상어계곡)라 했을까. 이곳은 해발이 겨우 8피트밖에 안 되는 얕은 늪지대다. 그래도 바닷물이 이곳까지 올라오므로 간혹 눈 먼 상어가 따라 들어왔다가 바다로 나가는 길을 찾지 못해 미로를 방황하는 곳이 바로 이곳이라고 한다. 샤크밸리라는 지명은 그래서 붙여졌다고 한다. ▶여행 메모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은 미국 최대의 아열대 자연보호구역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도 등재되어 있다. 이중 샤크밸리 지역은 ‘초원의 강(River of Grass)'이라 불리는 풀밭이 유명하다. 트램투어를 타고 편하게 앉아서 가이드 설명까지 들으며 구석구석을 둘러볼 수 있다. 방문하기 전 가능한 한 예약을 하는 것이 좋다. 샤크밸리 방문자 센터 주소= 36000 SW 8th St. Miami, FL ▶김평식 여행 등산 전문가. 꾸준히 여행칼럼을 집필했으며 ‘미국 50개주 최고봉에 서다’ ‘여기가 진짜 미국이다’ 등의 저서가 있다. 연락처= 213-736-9090 김평식 / 여행 등산 전문가

2021-08-22

[김평식의 신 미국유람] 홍학떼 춤추고 악어떼 어슬렁어슬렁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 (Everglades National Park)은 크게 세 지역으로 나뉜다. 첫째가 걸프만에 접해 있는 플라밍고(Flamingo), 둘째가 공원의 중앙에 있는 샤크밸리(Shark Valley), 세번 째가 서 북쪽에 위치한 빅 사이프리스(Big Cypress) 지역이다. 각 지역마다 환경과 생태가 다르고 그 범위 또한 너무나 광활하기 때문에 대략적으로나마 골고루 구경을 해야 에버글레즈 국립공원을 다녀봤다고 할 수 있다. 먼저 플라밍고 지역은 이름 그대로 수 백 수 천 마리 붉은 홍학(플라밍고)들이 얕은 물 속에서 평화스럽게 살고 있는 곳이다. 모양은 학과 비슷하지만 색깔이 붉어 흔히 볼 수 없는 이색적인 새. 하지만 아쉽게도 생태계 파괴 때문인지 지금은 여간해서 그 모습을 보기 쉽지는 않다. 이곳은 자연 생태계의 보고다. 매너티, 앨리게이터 같은 희귀 동물이나 플로리다 퓨마 같은 멸종 위기종도 서식한다. 앨리게이터( Alligator) 악어는 일반 악어와 달리 주둥이가 길쭉하게 나와 있고 체형이 왜소하다. 이들은 플라밍고 지역의 쿠트베이 폰드(Coot Bay Pond)라는,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작은 호수에 산다. 주변에 다른 호수들도 많지만 절대로 문밖 출입이나 마실 조차 나가지 않는 고집스러운 특성을 지녔다고 한다. 필자는 어디를 가나 등산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플로리다에는 산이 없으니 아예 등산은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곳 플라밍고 근처에는 왕복 10마일 정도의 ‘연안의 목초 밭(Coastal Prairie Trail)’이라는 등산로가 있어 걸어보았다. 하이킹에 갈증을 느끼던 참에 왼쪽으로는 걸프만의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걷는 맛도 좋고 오른쪽으로는 50에이커도 넘는 넓디 넓은 3개의 공원 풍광을 구경하는 눈도 즐거웠다. 하지만 이 길은 등산로라고는 해도 자연 생태계를 살펴보기 위한 산책로에 가깝기 때문에 힘 안들이고 쉽게 걸을 수 있다. 플라밍고에서 대충 구경을 마치고 다시 마이애미 쪽으로 올라오면 41번 하이웨이를 만나 서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가다 보니 길 옆에 악어들을 사육하며 묘기를 보이는 곳들이 많다. 또 플로리다 특유의 보트 투어 하는 곳도 있다. 에어보트라고도 하는 이 배를 타면 갈대밭이든 늪지대든 가리지 않고 쾌속으로 달리는데 이곳이 아니고서는 맛볼 수 없는 짜릿한 쾌감을 느낄 수 있다. 41번 서쪽으로 계속 가서 샤크밸리를 지나면 빅 사이프리스라는 삼나무 보호구역이 나온다. 방문객 안내소 뒤에 있는 산책로를 따라 보호구역 안으로 들어가면 사이프리스 나무들이 꽤나 들어차 있는데 옛날 벌목업자들이 무분별하게 벌목을 해서 지금은 많이 줄었다고 한다. 더욱이 전에는 무릎 높이까지 늘 차던 물이 지금은 거북이 등짝같이 쩍쩍 갈라져 있어 물고기들의 생사는 고사하고 그나마 남아 있는 삼나무의 생존 문제까지 불안해 보였다. 지면관계로 여러 곳을 한꺼번에 소개하려니 처삼촌 벌초하듯 대충 넘어가는 것 같아 독자들께는 참으로 미안하다. 다시 41번 서쪽으로 바다 끝까지 가면 왼쪽으로 매크로(Marco)라는 섬이 나온다. 이곳은 돈 많은 부자들이 마이애미 팜비치보다 더 많은 산다는 곳이다. 섬 안으로 들어가 보면 그야말로 딴 세상이다. 집들은 전부 대저택일이고 차고 앞에는 고급차들이 즐비하다. 뒷쪽으로는 집집마다 고급 요트와 큰 배들도 보인다. 이곳에 와 보니 천국이 멀리 있는 것도 아닌데 저 집 주인들과 뭐가 달라 같은 사람이면서도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나 싶다. ▶여행 메모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은 마이애미 남서쪽으로 50마일 거리에 있다. 1번 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면 플로리다 시티를 만나는데 이곳에서 9336번 남서쪽 끝까지 가면 나오는 막다른 종점이 곧 플라밍고다. 플라밍고 방문자 센터에서 시작하는 1시간 남짓 에어보트 투어는 꼭 타보기를 권한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섬 사이 늪지 구석구석을 누비는 에어보트 투어는 짜릿한 재미와 교육 효과를 동시에 채워준다. ▶김평식 여행 등산 전문가. 꾸준히 여행칼럼을 집필했으며 ‘미국 50개주 최고봉에 서다’ ‘여기가 진짜 미국이다’ 등의 저서가 있다. 연락처= 213-736-9090 김평식 / 여행 등산 전문가

2021-08-12

[김평식의 신 미국유람] 미국 최남단…산호초 열도 따라 환상의 바닷길

키웨스트(Key West) 할 때의 ‘키(Key)는 열쇠가 아니고 섬이라는 뜻이다. 플로리다 남쪽 지역 많은 섬 이름에 ’키‘라는 말이 붙는 이유다. 키웨스트 가는 길, 참으로 별나고 요상스럽다. 흡사 누에가 기어가면서 일렬로 알을 갈겨놓은 듯 섬 하나 다리 하나, 다리 하나 섬 하나가 마이애미에서 1번 하이웨이 남쪽으로 150마일나 이어진다. 이 길은 미국에서도 가장 멋진 드라이브 코스로 알려진 길로 다리 하나가 7마일이나 되는 되는 긴 다리(7마일브리지)도 있다. 키웨스트는 섬과 섬을 연결한 42개의 다리를 다 건너가면 나오는 마지막 섬을 가리킨다. 이 지역 수많은 섬 중 가장 인기가 있어 매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그만큼 숙박료도 비싸 성수기엔 부르는 게 값이다. 그것도 예약 없이는 하룻밤 얻기가 하늘에 별 따기만큼 어렵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니 볼거리와 즐길 거리도 많다. 석양과 함께 이국적 분위기가 자아내는 낭만에 젖어본다면 추억 만들기에 이만한 곳도 없겠다. 키웨스트 너머 걸프만 맞은편에는 그리 멀지 않은 지근 거리에 쿠바가 있다. 미국에서 볼 때 마치 암 종양과도 같고 목에 걸린 생선 가시와도 같은 공산 국가다. 과거 소련 미사일 기지 설치와 관련해 일촉즉발의 사태가 있었음을 기억하니 감회가 더욱 새롭다. 키웨스트를 방문한다면 특히 세 가지 볼거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첫째는 세계적인 문학 거장 헤밍웨이가 살던 집이다. 이 집엔 현재 헤밍웨이가 쓰던 타자기와 함께 많은 고양이들만 빈 집을 지키고 있지만 미국이 자랑하는 대 문호의 문학 정신을 되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크겠다. 젊을 때부터 초저녁 잠이 많기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필자도 ’노인과 바다‘를 밤을 꼬박 새우며 완독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고졸 학력 밖에는 없지만 열정적인 작품 활동으로 8편의 장편소설과 8편의 단편 그리고 4편의 비소설 작품을 남겼다. 종군기자로도 일했으며 퓰리처상도 수상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킬리만자로의 눈‘ ’무기여 잘 있거라‘ 등이 잘 알려진 작품이며 1954년엔 ’노인과 바다‘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헤밍웨이는 2번의 비행기 사고 후유증으로 말년에 우울증을 앓다가 1961년 아이다호주의 선밸리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필자는 헤밍웨이가 마지막을 살았던 아이다호 집도 가 보았는데 기회가 되면 그곳도 소개해 보려 한다. 두 번째 볼거리는 헤밍웨이 집 건너편에 있는 등대박물관이다. 1847년 이 섬에서 최초로 건축된 건물이다. 수심이 얕고 산호초가 많아 배들이 자주 좌초되는 바람에 당시에는 전기도 없어 고래 기름을 태워 등불을 밝혔는데 4시간 마다 그을음을 청소해야 하는 아주 원시적인 등대였다. 입장료를 내고 등대 위 전망대에 올라가 보면 사방팔면의 시가지 전망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1800년 후반 거대한 허리케인으로 키웨스트 섬 전체가 물에 잠겼을 때 이 등대로 대피한 사람만 살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세 번째 중요한 볼거리는 미국 최남단을 알리는 조형물이다. 원래 이 섬의 이름이 키웨스트이긴 하지만 지형적으로는 서쪽이 아니라 미국 전체에서 제일 남쪽에 위치해 있다. 위도상으로는 텍사스주 리오그란데강 하류에 있는 브라운스빌(Brownsville)이라는 도시와 비슷하나 간발의 차이로 이곳 키웨스트가 최남단이 되었다. 등대하우스에서 남쪽으로 몇 블록만 내려가면 핵탄두 모양의 미국 최남단 조형물이 서 있다. 제일 위에는 여기서부터 ’쿠바 90마일‘이라는 문구가, 그 아래엔 ’미 대륙 남쪽 끝(Southernmost Continental USA)‘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기념사진을 남기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이렇게 좋은 곳에도 연례행사처럼 찾아오는 불청객이 있다. 허리케인이 바로 그것인데 주민들은 창문마다 합판을 쳐 막거나 대피를 떠나는 등 곤욕을 치른다. 하긴 키웨스트만 그럴까. 미국은 곳곳이 다 축복받은 땅이지만 그래도 동풍서진이라고 동부는 바람, 서부는 지진이라는 자연재해 때문에 걱정들이 많다. 또 중부 내륙으로는 토네이도도 있다. 그렇게 본다면 지진도 없고 태풍도 비껴가는 애틀랜타는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일까 부럽기도 하다. 아마 그래서 점점 더 많은 한인들이 조지아로 몰려드는 지도 모르겠다. 사족. 수산시장 가서 생선회라도 좀 떠서 키웨스트 가는 길 7마일브리지 아래 공원서 걸프만 옥빛 바다를 바라보며 소주와 함께 먹는다면 아마 그 기분은 죽어도 잊히지 않으리라. ▶여행 메모 키웨스트는 플로리다주 최남단이자 미국 최남단이다. 마이애미에서 차로 4시간 정도 걸린다. 보통 마이애미까지 비행기로 가서 현지에서 투어버스를 신청해 가기도 하고 렌터카를 빌려 갈 수도 있다. 버스 투어는 바가지를 쓸 수도 있으므로 현지 구매보다 미리 온라인으로 미리 예약해야 한다. 직접 차로 갈 계획이라면 장기 여행 계획을 꼼꼼히 세우는 것이 좋다. ▶김평식 여행 등산 전문가. 꾸준히 여행칼럼을 집필했으며 ‘미국 50개주 최고봉에 서다’ ‘여기가 진짜 미국이다’ 등의 저서가 있다. 연락처= 213-736-9090 김평식 / 여행 등산 전문가

2021-08-01

[김평식의 신 미국유람] “나이야, 가라” 외쳐 보고, 거대한 발전소도 보고

#.너무나 많이 알려진 곳이다. 미국 살면 한 번은 가봐야 할 곳이라 소문이 나서 그런지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다녀온 곳이다. 필자도 몇 번이나 갔지만 또 한 번 되새김질이라도 해 보고 싶은 곳이다. 뉴욕주 버펄로 인근에 있는 나이애가라 폭포는 남미의 이과수 폭포, 아프리카의 빅토리아 폭포와 함께 세계 3대 폭포로 일컬어진다. 북미 오대호 중의 막내 이리(Erie)호에서 내려오는 물이 만들어 내고 있는데 오늘은 폭포 자체 이야기보다는 이 엄청난 물로 돌아가는 나이애가라 수력발전소 이야기도 좀 해보려 한다. 나이애가라 미국 쪽 국경 검문소로부터 10여분 동쪽으로 내려가면 상상을 초월하는 댐이 나온다.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댐이다. 애초 1900에이커의 인디언 원주민 보호구역이었던 이곳에 둑을 쌓아 220억 갤런의 물을 보관할 수 있는 로버트 모세스 인공호수를 만들었는데 건립 당시인 1961년 무렵에는 세계에서 제일 수력발전용 댐이었다. 미국이 얼마나 치산치수를 잘 하는지는 백문이 불여일견, 이 댐에 가보면 세계 최고의 부강한 나라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나이애가라 댐의 발전 용량은 2675메가와트에 이른다. 참고로 네바다주에 있는 유명한 후버댐은 미국에서 7번째로 큰 댐이며 발전량은 2080메가 와트다. #. 나이애가라까지 갔다면 댐 구경도 좋지만 그래도 폭포는 절대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곳이다. 나이애가라 폭포 관광의 최고 하이라이트는 역시 보트 투어다. 173피트 높이의 폭포 바로 밑까지 유람선이 파고 들어가는데 비닐 옷을 입고 있어도 워낙 엄청나게 쏟아지는 물보라가 속살까지 파고 들어와 입으나 마나, 무용지물이다. 카메라나 전화기 등 소지품은 방수 비닐에 단단히 담아두지 않으면 물에 젖어 속수무책, 각오를 해야 한다. 폭포 위에 있는 염소섬(goat island) 섬으로 들어가 폭포 바로 밑까지 걸어서 내려가 볼 수도 있고 여유가 있다면 헬리콥터를 타고 폭포 위를 한 바퀴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나이애가라 폭포는 매년 1500만명의 방문객들이 북적대는 명소이기 때문에 주변에 덩달아 특산품 가게나 유흥거리가 꽤나 많다. 특히 캐나다 쪽으로 넘어가면 한인이 운영하는 현지 특산물인 건강식품들도 즐비하다. 폭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 타워도 유명하다. 우선 타워 아래 층에 있는 3D나 4D영화를 보면 상영 중에 바람도 불고 물보라도 맞고 갑자기 의자도 움직이는 등 재미가 꽤 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775피트 높이의 스카이론 타워(Skylon Tower)에 올라가 보면 아주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사방으로 조망할 수 있는 폭포 전경도 일품이지만 이곳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더불어 저녁 뷔페 식사라도 한다면 그보다 더한 낭만은 없으리라. 공수래 공수거 인생, 좋은 사람과 함께 좋은 곳에서 맛난 것 먹는 것만큼 행복지수를 높이는 것도 없다지 않는가. 어둠이 내릴 때 식사를 하면서 건너다 보이는 오색찬란한 폭포의 야광 조명 쇼도 기억에 남을 것이다. 미국 쪽 폭포를 향해서는 7개, 캐나다 쪽 폭포를 향해서는 11개의 서치라이트가 비추는데 시간마다 변하는 형형색색 물 빛깔은 오감이 다 저릴 정도다. 나이애가라 방문객들은 저마다 늙는 것이 아쉬워 폭포를 향해 “나이야, 가라” 고함들을 지른다고 하는데 그런다고 젊어지기야 하겠는가. 그저 희망사항이겠지만 그래도 현장 방문 때를 생각하며 다시 한 번 외쳐본다. “나이야, 가라, 가라!” ▶여행 메모 나이애가라 댐 투어를 위해서는 미국 쪽 국경 검문소를 지나 104번 동쪽으로 10여분 정도 내려가면 나오는 파워비스타(Power Vista) 안내소를 찾아가면 된다. 9.11사태가 터지기 전에는 완전 개방되어 속속들이 내부를 돌아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입장 자체가 매우 까다로워져 기다리는 시간이 아깝다며 포기하는 사람도 많다. 이왕 나이애가라까지 갔다면 폭포 밑에 있는 온타리오 호수와 천섬(Thousand Islands)도 빼놓지 말자. 아예 일정을 넉넉히 잡고 캐나다로 넘어가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토론토에도 들러 근사한 한식도 즐겨봐도 좋겠다. ▶김평식 여행 등산 전문가. 꾸준히 여행칼럼을 집필했으며 ‘미국 50개주 최고봉에 서다’ ‘여기가 진짜 미국이다’ 등의 저서가 있다. 연락처 213-736-9090 김평식 / 여행 등산 전문가

2021-07-25

[김평식의 신 미국유람] 둥둥 바다 위 세계에서 제일 긴 다리

미 동부 대서양의 새 명소 15년 난공사끝 1964년 완공 끝없이 이어진 길 ‘장관’ 해저 터널 구간에선 ‘섬뜩’ 체스피크 베이브리지(Chesapeake Bay Bridge)는 세계에서 제일 긴 다리다. 복잡한 원래 이름(Lucius J Kellam Jr Bridge)따로 있지만 버지니아주 체사피크만에 있다 해서 흔히 체사피크 베이 브리지라고 부른다. 이 다리는 체사피크만 입구 매릴랜드 본토와 델마바 반도를 연결하는 다리로 버지니아주 동쪽 해안에서 대서양 바다 가운데로 나가 매릴랜드주와 델라웨어 주로 넘어가는 곳에 있다. 다리 길이만 자그마치 17.6마일(28.4km). 말이 17마일이지 100리에 가까운 다리가 망망대해에 떠 있다고 상상해 보시라. 활같이 휘어있는 다리가 가도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통행료 (편도 차당 15불)를 지불하는 톨게이트에는 개스 눈금을 꼭 확인하라는 경고문까지 붙어 있다. 그렇다고 그냥 길기만 한 다리는 아니다. 망망대해 바다 위를 달리면서 양쪽으로 펼쳐지는 경관은 아름답기로도 정평이 나 있다. 대서양 바다 위를 시원스럽게 달리는 기분은 흥분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다리 중간중간 두 군데나 바다 밑으로 들어가는1마일 길이의 왕복 2차선 해저 터널 구간도 빼 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높은 산을 뚫고 들어가는 터널이 아니라 바다 밑을 지나는 터널이기 때문에 터널 입구를 들어가면서부터는 혹시나 하는 우려와 함께 약간의 겁도 난다. 체사피크 베이 브리지는 1949년 11월에 착공하여 10여년이 지난 1964년 4월15일 완공됐다. 처음 공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 다리는 절대로 완공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을 정도로 어려운 난공사였다. 그래서 지금도 토목건설 분야에선 세계 7대 불가사의라고 일컬어질 정도다. 실제로 바다 위와 속을 헤집고 하는 공사였던 것만큼 공사 중 희생된 인명도 굉장히 많았다고 한다. 이 다리가 개통됨으로써 다리 양쪽은 육지로 돌아가는 거리에 비해 153Km, 약 1시간 반을 단축시키는 효과를 거두게 되었다. 다리 안쪽 체사피크만은 미국 해군사관학교와 미국 최대 해군 기지가 있는 아나폴리스와 미국의 심장부인 워싱턴DC, 볼티모어 등 큰 도시들을 끼고 있는 곳이다. 따라서 드나드는 선박 통행도 굉장히 많은 중요한 해로다. 지금까지 필자가 다녀본 경험으로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5개의 만(Bay)이 제일 큰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이곳에 와서 보니 샌프란시스코만은 말 그대로 ‘깜’도 안 된다. 해저 터널은 다리 중간중간 네 곳에 인공섬을 만들고 그곳을 통해 드나들 수 있도록 입구와 출구를 만들어 놓았다. 첫 번째 인공섬에 도착하면 바로 터널로 들어가서 다음 인공섬으로 나왔다가 다시 다음 터널로 들어갔다 마지막 인공섬으로 나오게 되어 있다. 이는 두 군데의 터널 위로 군함이나 대형 선박이 통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첫 번째 인공섬에는 방문자 안내소를 겸한 식당과 선물가게가 있고 피어도 있어 낚시 좋아하는 사람은 만경창파를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기기엔 아주 딱이다. 다리 북쪽 끝의 피셔맨스 섬에는 아담하고 깨끗한 단독 건물에 웰컴센터 방문객 안내소가 나온다. 여기서 끝까지 다리를 건너가도 좋고 되돌아 버지니아쪽으로 가려면 통행료는 5불만 내면 된다. 다리 구경을 왔다면 인공섬 쉼터에 반드시 차를 세우고 둘러보는 것이 좋다. 안 그러면 다리와 바닷속 터널 지난 기억밖에 안 남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몇해 전 필자가 방문했을 땐 다리를 다 건너 톨게이트를 지나 얼마 안 가면 참한 한국식당이 있었는데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만약 있다면 바닷속을 헤메느라 울렁거린 속을 얼큰한 육개장으로 다스려주는 것도 괜찮으리라. # 여행메모 체사피크 베이브리지는 워싱턴 DC나 해군사관학교가 있는 아나폴리스 등을 방문할 때 꼭 한 번 들러보면 좋다. 시작은 버지니아주 주도인 리치몬드에서 64번 동쪽으로 약 100마일 정도 가면 다리 진입로가 나온다. 통행 요금은 편도 기준15달러다 처음 통과 후 24시간 내에 반대방향으로 돌아오는 차량에 대해서는 두번 째 요금 징수 시 5달러만 내면 된다. 허리케인이 자주 오는 여름철은 피하는 것이 좋겠다. 김평식 / 여행등산 전문가

2021-07-18

[김평식의 신 미국유람] 44년 지나도 식지 않는 ‘로큰롤 제왕’ 추모 발길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그레이스랜드(Graceland)하면 ‘도대체 그게 뮈지?’ 하는 분도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이 그 유명한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1935~1977)가 죽기 직전까지 살았던, 테네시주 멤피스에 있는 집이라고 하면 ‘아하, 그 곳’ 하며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지난 4월 애틀랜타를 방문하면서 사우스캐롤라이나, 노스캐롤라이나까지는 다시 둘러 봤지만 테네시주는 채터누가나 내슈빌 등이 비교적 가까웠지만 일정상 가 보지 못했다. 특히 멤피스는 같은 테네시주라 해도 서남쪽 끝에 있어서 차로도 6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래도 과거 미국 50개주 최고봉 정복 대장정에 올랐을 때를 비롯해 여러 번 들렀던 곳이라 옛기억을 더듬어 소개해 본다. 로큰롤의 제왕으로 불리는 엘비스 프레슬리는 가수에 영화배우로까지 활약하면서 1950~1960년대 미국을 뒤흔들어 놓았던 사람이다. 하지만 마약 과다 복용으로42세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던 기구한 운명의 사나이기도 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1935년 1월8일 미시시피주 투펄로(Tupelo)라는 소도시의 2베드룸 작은 집에서 태어났다. 그보다 30여분 먼저 태어난 쌍둥이 형이 있었지만 바로 사망했다. 그는 13살때인 1948년 가족을 따라 멤피스로 이사했다. 가정이 경제적으로 어려워 한때는 트럭 운전사 일을 하면서도 뛰어난 음악적 재능으로 가수가 되겠다는 꿈과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1954년 우연한 기회에 가수로 데뷔하게 되었다. 그는 천부적인 음성과 타고난 재능으로 처음부터 스타성을 인정을 받았다. 데뷔 초기엔 교회 성가나 팝송 컨트리 뮤직 등 닥치는 대로 부르며 인기를 모았고 1956년부터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오르는 등 일약 대 스타로 발돋움했다. 그가 가는 곳마다 구름같은 인파들이 몰려들었고 프레슬리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그런 인기를 배경으로 영화에도 부지런히 출연했는데 그가 평생 출연한 영화만 33편이나 된다.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프레슬리는 1957년 징집영장을 받고 이듬해 군에 입대, 2년간의 군 복무도 마쳤다. 이런 사실을 보면서 어떻게든 병역을 피해볼까 궁리하고 잔꾀를 부리곤 하는 한국의 유명 가수나 정치인, 재벌 2세들이 떠올라 씁쓸한 상념에 젖어본다. 약 14에이커 크기의 그레이스랜드는 프레슬리가 부모를 위해 1957년 약 10만달러에 매입했다. 그레이스랜드라는 이름은 매입 전 주인의 딸 이름이 그레이스여서, 프레슬리가 매입한 후에도 계속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프레슬리가 죽은 후 유족들은 비싼 세금과 유지비 때문에 이 집을 지키기 힘들어 하다가 1982년 유료 박물관으로 개방하기로 하고 일반에 공개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레이스랜드는 애쉬빌 빌트모어하우스와 함께 가장 많은 미국인들이 방문하는 개인 저택이 되었다. 또 미국인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집으로 백악관 다음으로 이곳이 되었을 정도로 유명해지기도 했다. 실제로 매년 방문객 숫자만 70만명이 넘어 죽은 엘비스 프레슬리가 멤피스를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레이스랜드 안에 있는 네 채의 건물에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공연할 때 입었던 의상과 목걸이, 반지, 기타, 트로피와 사진 등이 빈틈없이 진열되어 있다. 또 자동차 수집광이었던 프레슬리가 소유했던 22대의 자동차 중 가장 아끼고 좋아했던 1954년형 핑크색 캐딜락 등 20여대의 자동차와 오토바이도 전시되어 있다. 길 건너편 매표소 앞에는 프레슬리가 타고 다니던 자가용 비행기 2대도 볼 수 있는데 이중 한 대는 프레슬리의 딸 이름을 딴 리사 마리(Lisa Marie)호라 명명했다고 한다. 그의 딸 리사 마리는 현재 그레이스랜드의 소유권을 가진 실제 집주인이기도 하다. 그레이스랜드에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묘소도 있는데 원래는 공원묘지에 묻혔다가 극성 팬들 때문에 훼손이 심해 결국 이곳으로 이장했다고 한다. 화려한 의상과 현란한 몸짓으로 기타를 치면서 신들린 듯한 가창력으로 청중을 사로잡았던 엘비스 프레슬리는 사후 44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레이스랜드 담벼락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는 추모 낙서는 물론 그의 기일이 되면 전날 밤부터 입추의 여지없이 멤피스 거리를 매우며 밤을 꼬박 새우는 모습들이 바로 그 증거다. 1977년 8월16일 42살의 젊은 나이로 유명을 달리하기는 했지만 엘비스 프레슬리가 그레이스랜드 앞 길 불러바드의 이름으로 남은 것처럼 그의 명성 또한 영원히 불변할 것이다. ▶여행 메모 멤피스는 내슈빌과 함께 테네시를 대표하는 최대 도시다. 블루스 음악의 도시로 테네시와 아칸소, 미시시피 등 3개주의 경계에 있다. 애틀랜타에서 가자면 약 400마일 거리로 차로 6시간 반에서 7시간 정도 걸린다. 그레이스랜드는 1991년 국립사적지(National Historic Site)로, 2006년에는 국립 역사기념물(National Historic Landmark)에 등록됐다. 입장권은 2021년 기준으로 43불부터 전담 안내원의 설명과 체험까지 포함된 190불 VIP 투어까지 다양하다. ▶김평식 여행 등산 전문가. 꾸준히 여행칼럼을 집필했으며 ‘미국 50개주 최고봉에 서다’ ‘여기가 진짜 미국이다’ 등의 저서가 있다. 연락처 213-736-9090 김평식 / 여행 등산 전문가

2021-07-11

[김평식의 신 미국유람] 뜨끈뜨끈 온천수 '콸콸'…몸도 마음도 절로 '휴식'

미국 유일의 온천 국립공원 올해로 딱 100년 맞은 명소 1만4000년전부터 '휴양지' 하이킹 즐기며 쉬기 좋아 미국엔 60여개의 국립공원이 있다. 산이 높고 웅장하다든지 협곡이 깊다든지 아니면 호수가 크다든지 또는 동굴이 길고 특이하다든지 나름대로 지정된 이유가 있다. 그런데 온천물이 특별하다면 어떨까? 중부 아칸소주에 가면 미국에선 유일무이하게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온천이 있다. 이렇게 넓고 큰 미국 땅에 비슷한 온천이 얼마나 많겠는가. 전국에 깔려있는 그 많은 온천 중에 오직 이곳만 국립공원으로 선정된 이유가 무엇일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궁금증을 못 이기고 직접 찾아가 보았다. 이름하여 아칸소 핫스프링스 국립공원 (Hot Springs National Park)이다. 한국 사람은 다른 어떤 나라 사람들 보다 온천욕을 좋아하는 민족이다. 아마 밥은 한 끼 굶어도 따뜻한 온천탕 속에 몸 담그고 있는데 독촉하여 어서 나오라면 화부터 안 낼 사람은 없지 않을까 싶다. 만일 이 온천 국립공원이 한인들이 많이 사는 애틀랜타나 뉴욕 또는 LA 근교에 있다면 한국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도 남으리라. 아칸소주 핫스프링스는 미남이면서 달변가로도 유명한 빌 크린턴 전 대통령의 고향이기도 하다. 가장 큰 도로인 센트럴 길 양쪽에는 큼직한 그의 사진이 늘 걸려있다. 남자가 봐도 질투가 날 정도로 잘 생겼는데 여자들이 볼 때는 어땠을까.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의 입방아에도 올랐고 ‘부적절한 관계’라는 말도 생겼을 것이다. 그 때문에 현직 대통령에 있으면서 본인도 물론 많은 시련을 겪었고 개인적으로는 이곳에 올 때마다 그의 아내 힐러리 클린턴 여사의 마음도 헤아려 보게 된다. 핫스프링스 국립공원은 약5000에이커 넓이로 1921년에 18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됐으니 올해로 꼭 100년을 맞았다. 원래 이곳은 ‘루이지애나 테리토리’라고 불리던 프랑스 땅이었는데 1803년 제퍼슨 대통령이 땅 전체를 매입하여 미국령으로 편입시킨 것이다. 온천이 발견된 지는 1만4000년을 넘게 거슬러 올라간다. 원주민인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그때부터 온천수의 효능과 영험함을 알고 이곳에 자주 와서 목욕도 하고 음료수로도 사용해 왔다고 한다. 냉각시킨 온천수를 장복하면 특히 위장에 큰 효험을 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타운의 주 도로인 센트럴 길 방문자 주차장 옆에는 냉각수 받는 수도 꼭지 시설이 꽤나 많고 큰 물통을 양손에 들고 순서를 기다리는 노인들은 물 받는 일을 하루 일과로 삼고 있는 듯하다. 방문자들을 위해 1갤런 짜리 빈 물통을 파는 가게도 있다. 이곳 온천 국립공원에는 다른 곳과 다른 특별한 것이 하나 더 있다. 온천탕에 들어가기 전에 의사의 진찰을 받는다는 것이다. 방문객의 아픈 곳을 보거나 들은 의사가 지정해 주는 탕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이는 물의 온도와 미네랄 함유량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온천장 타운 안에는 대략 50개의 호텔이 밀집해 있는데 의사의 진찰을 받고 탕에 들어가는 호텔은 고작 서너 군데밖에 없다. 온천을 즐기기 전후에 뜨거운 온천수가 흘러내리는 핫스프링스 마운틴 하이킹도 좋다. 자동차로 올라가도 되고 3마일 정도 등산로를 따라 걸어도 좋다. 정상 전망대에 올라서서 발 아래 사방을 내려다 보면 개천에서 용 났다는 클린턴가의 수박밭은 보이지 않지만 건너편에 있는 웨스트 마운트 정상까지 시원하게 보여 탄성이 절로 나온다. 나무가 울창해 단풍철에 방문한다면 훨씬 더 좋을 듯 싶다. 13년 전인 2008년 미국 50개주 최고봉 등정 대장정에 올랐을 때 처음 이곳을 지나면서 이런 시골 벽촌에서 남편은 대통령, 본인은 국무장관에 대통령 일보직전까지 갔던 힐러리 여사의 시댁이야 말로 집터가 얼마나 좋을까 부러운 마음이 들었던 생각이 난다. 그 후에도 몇 번을 왔건만 그 좋다는 집터는 구경조차 못 해본 것이 참으로 후회스럽다. #여행메모 아칸소주는 배우 윤여정이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받은 영화 ‘미나리’의 배경이 된 곳이다. 아칸소주는 미국의 최대 쌀 생산지이기도 하다. 월남미라고도 하고 알랑미라고 도 불렀던 길쭉길쭉하고 찰지지 않은 품종이 주로 재배되는데 경작지가 끝도 안 보일 만큼 넓다. 온천에서 숙박할 경우 50여개의 호텔 중 객실까지 온천수가 바로 들어오는 호텔은 최상급의 4군데뿐이라고 하니 필히 확인하고 들어가야 한다. 도시 전체가 국립공원이어서 따로 공원 입장료는 받지 않는다. 김평식 / 여행 등산 전문가

2021-07-05

[김평식의 신 미국유람] 미국 역사 바꾼 남북전쟁 최대 격전지

6월도 거의 다 지나갔다. 지난주는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던 6.25 71주년이었고 한인사회에서도 곳곳에서 기념식이 열렸다. 이 무렵 미국도 남북전쟁의 분수령이 된 게티스버그 전투가 7월 1~3일 사흘간 벌어졌다. 남북전쟁은 무려 4년 동안 진행된 미국판 동족상잔(?) 이었다. 그 처절했던 전쟁 기간 중 가장 치열하고 가장 참혹했으며 남과 북의 승부를 결정적으로 돌려놓은 곳이 바로 이곳 게티스버그였다. 펜실베이니아 중남부 지역의 작은 시골 마을인 게티스버그에서 대치하던 남군과 북군. 1863년 7월1일 이른 아침, 남군의 선제 공격으로 운명의 전투는 시작됐다. 당시 객관적 전력으로는 남군이 북군보다 월등히 강력했다. 그러나 막강 전력에 선제공격까지 감행했지만 결과는 남군의 대패였다. 북군은 여기서 잡은 승기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링컨의 주창대로 노예해방 또한 실현될 수 있었으니 게티스버그야말로 미국의 역사를 바꾼 현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미국 여행기를 오랫동안 써 온 필자로서는 게티스버그 방문도 반드시 이루어고 싶은 오랜 꿈이었다. 지금은 몇 번씩이나 가 봤기에 눈을 감고도 찾아갈 정도지만 처음 방문했을 때에는 어디가 어딘지 그야말로 뜬 구름 잡는 기분이었다. 물건을 제대로 모르면 돈이라도 많이 주라는 말이 있듯이 첫 방문 때는 제일 비싸고 시간도 사장 긴 2시간 짜리 투어 버스를 예약했다.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영화관으로 들어가 30분 정도 남북전쟁에 대한 영화를 보았고, 2층으로 옮겨 당시 전투 상황을 그대로 재현한 시클로라마(Cyclorama) 영상도 감상했다. 촌놈은 어디를 가나 티가 나는가 보다. 시네마스코프나 아이맥스 영상은 그래도 익히 봐 왔지만 이놈의 시클로라마 영상은 난생 처음이다. 이름부터 생소한 데다 360도 원형 화면 전체에서 벌어지는 파노라마식 입체 장면은 감탄을 넘어 경이 그 자체였다. 사진인지 그림인지 뽀얀 포연에 가려 식별조차 어려운 가운데 요란한 포탄이 터지면서 번쩍 번쩍 비치는 섬광을 보면서 이게 정말 영상인지 실전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였다. 더욱이 수많은 말과 마차들이 넘어지고 뒹굴며 부지기수로 병사들이 죽어나가는 참혹한 장면 앞에서는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남북전쟁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면화 생산지의 노동력 문제에서 발단되어 노예 해방문제로 까지 비화된 남부와 북부의 경제적 이해 다툼도 한 요인이었다. 당시 남부에 있던 많은 주들은 면화 수출이 큰 수입원 이었는데 북부지역에서 정책적으로 수출에 제동을 걸었을 뿐 아니라 목화밭에서 일하는 흑인 노예들을 해방시켜야 한다니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는 막다른 골목까지 온 상황이었다. 거기다 멕시코와 전쟁에서 승리한 후 어디 궁둥짝이라도 비빌 데가 없나 기회만 노리고 있던 수많은 유휴 군인들에겐 마침 골 부리고 싶은 사람한테 빰까지 때린 격이기도 했다. 2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곳곳에서 치열했던 전쟁의 흔적들을 찾아 다니며 가이드의 이런 설명을 들었다. 흑인도 한 사람 없는 100% 백인들 틈에 끼어 누리끼리한 동양인이 미운 오리새끼 마냥 용감하게 동승하고 있으려니 괜히 집중 조명을 받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남군의 선제공격에 후퇴를 거듭하던 북군이 전세를 뒤집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흑인들이 도망 나와 노예 해방을 주창하는 북군으로 편입하는 바람에 7월3일 전세가 극적으로 역전되었다는 가이드의 얘기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사흘 동안의 처절했던 게티스버그 전투에 참전한 병사는 남군 북군 모두 합해 16만 여명이나 되었다. 그러니 죽거나 다친 병사는 얼마나 많았을까. 기록을 찾아보니 이 전투에서 죽거나 다치거나 실종된 병사는 모두 5만 1000명이 넘었다. 북군은 2만 1000명, 남군은 2만 8000명. 당시 전투에서 희생된 말과 병사들의 시신을 모아놓고 태우는데 고약한 악취가 석 달 동안이나 근방을 진동했다 하니 얼마나 끔찍했을까 싶다. 그 많은 젊은이들이 못다 핀 한을 품고 구천을 헤매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니 이방인의 가슴조차도 아리고 또 아린다. ▶여행 메모 게티스버그 전쟁터는 국립 군사공원(Gettysburg National Military Park, 주소 : 1195 Baltimore Pike Gettysburg, PA 17325) 내에 있다. 연 방문자도 100만 명이 넘는다. 게티스버그가 더 유명해 진 것은 전투가 끝난 뒤 4개월 가량 지나 이곳을 방문한 링컨 대통령 때문. 그는 이곳에서 그 유명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게티스버그 연설을 했는데 그 현장이 현충원으로 남아있다. 공원 입장료는 없지만 영화를 보려면 따로 관람료(시클로라마 포함)를 내야 한다. 어른 15달러. 65세 이상 시니어는 14달러. 가이드 설명을 동반한 투어는 자동차(6명까지) 75불이고 버스는 어른1인당 35달러다. ▶김평식 여행 등산 전문가. 꾸준히 여행칼럼을 집필했으며 ‘미국 50개주 최고봉에 서다’ ‘여기가 진짜 미국이다’ 등의 저서가 있다. 연락처= 213-736-9090 김평식 / 여행 등산 전문가

2021-06-27

[김평식의 신 미국유람] 60년째 화염·연기…땅 갈라지고 사람 떠나고

세상에는 참으로 별난 곳도 많다. 도시 전체가 화마에 시달려 흔적조차 없어졌다면 과연 믿을 수 있겠는가? 저주받은 마을, 또는 불타는 유령마을이라고도 불리는 펜실베이니아 중부의 작은 마을 센트레일리아(Centralia)가 바로 그 지역이다. 아무도 찾지 않는 이곳을 굳이 찾아 가 본 사연은 이렇다. 현 애틀랜타중앙일보 이종호 대표가 몇 년 전 L A중앙일보 논설실장으로 있을 때 우연히 이곳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는데 그때부터 도대체 어떤 곳일까 뇌리에서 지워지지를 않았다.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남북전쟁의 격전지 게티스버그를 여행하고 나서 불과 2주만에 다시 시카고행 비행기에 올랐다. 시카고 공항에서도 펜실베이니아주 센트레일리아까지는 약 750마일이나 된다. 하루 종일 가도 다 못 가는 거리를 요즈음 세상에 인터넷 보고 쉽게 글을 쓸 수도 있으련만 고집이랄까, 집념이랄까 꼭 가 보고야 말겠다는 우직함을 스스로 원망도 해 가면서 달려갔다. 여기 저기 땅 속에서 연기가 솟고 땅이 갈라지며 도로의 아스팔트는 군데 군데 파도를 치며 푹푹 패이고 벗어놓은 신발이 녹을 정도라면 귀신도 곡할 노릇이 아니겠는가. 미국 땅에 그런 곳이 있다는데 명색이 미국 구석구석은 안 가본 곳 없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제 아무리 멀다고 해도 아니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갖은 고생끝에 현장에 당도해 보니 짐작은 하고 왔지만 보기에도 도시 전체가 을씨년 스럽다. 당장이라도 땅이 꺼지지 않을까 걸음걸이 마다 조심스럽다. 1만5000명이나 살았다던 도시의 자취는 온데 간데 없고 낙서만 가득한 도로, 어수선한 가로수와 잡초들만이 옛날의 영화를 대변해 주는 듯했다. 집이 있던 자리는 거의 모두 철거하여 마치 바둑돌 없는 바둑판처럼 경계 표시만 선명히 남아있었다. 이걸 보려고 그 먼 길을 달려왔던가 일순 후회도 했다. 하지만 유람을 하다보면 늘 물 좋고 정자 좋은 곳만 만날 수는 없는 법. 때론 이런 폐허도 만나고 볼거리는 없어도 사연이 특별한 곳도 한번쯤 찾아보는 게 호기심 많은 진정한 여행자의 도리가 아닐까 위안을 해본다. 센터레일리아 도시 가운데를 관통하는 도로가 61번 프리웨이인데 그 중 제일 심하게 균열이 간 곳은 그야말로 폭격의 현장이거나 엄청난 지진을 당하지 않고야 이럴 수는 없겠다 싶을 정도였다. 군데 군데 웅덩이가 생기질 않았나 도로가 쭉쭉 갈라지질 않나. 어쩔 수 없이 정부는 시 외곽으로 우회도로를 만들어 차량을 통행시키고 있었다. 왜 이렇게 됐을까. 만나는 사람이라도 하나 있어야 사연을 물어보든지 할 텐데 인적 자체가 없었다. 그렇게 답답한 가슴을 끌어 안고 공동묘지 쪽으로 가고 있는데 마침 개 한마리와 함께 산책을 하던 존(John)이라는 중년 남자를 만났다. 그의 설명은 이러했다. 이 도시 주변으로 석탄 매장량이 엄청많아 1960년대 이전까지는 탄광업이 호황을 이루어 경제적으로도 풍성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렇게 평화스럽던 마을에 1962년 어느 날 마켓 쓰레기통에서 불이 났고 마을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바로 껐는데 3일뒤 또 불이 난 것이다. 이후 계속해서 불이 났지만 방화의 흔적도 없고 여기저기 지하에서 연기도 치솟았지만 도무지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미스터리였다. 주 정부에서도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으며 진화에 전력투구하였지만 속수무책, 불은 꺼지지 않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지하에 매장된 석탄 광맥에 불이 옮겨붙어 인력으로는 진화가 불가능하게 된 일이었다. 전문가들은 현재 기술로는 진화가 불가능하며 지하 석탄 매장량 전체가 연소되려면 약 250년이나 걸릴 것으로 진단했다. 주 정부는 어쩔 수 없이 1983년부터 도시 전체를 매입하고 주민들에게 철수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이후 차마 고향 땅을 버리지 못한 사람 9명만(2007년 현재) 남았으나 지금까지 살고 있는지는 필자도 확인하지는 못했다. 사람 일도 한치 앞을 알수 없듯이 도시의 운명도 마찬가지인 듯 싶다. 그렇게 흥청망청 융성했던 옛날 로마 도시 폼페이도 화산 폭발로 하루 아침에 사라지지 않았던가. 이곳 센트레일리아를 둘러보면서도 원인은 다르지만 이렇게 대책없이 사라질 수도 있구나 싶어 오래도록 숙연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여행메모 실제로 방문하려면 시카고보다는 필라델피아 쪽에서 가는 게 훨씬 가깝다. 필라델피아에서 서북쪽으로 약 110마일, 중부 해리스버그에서는 60마일 남짓 거리다. 호기심 많은 사람이라면 지나는 여행길에 한 번쯤은 들러볼 만 하다. 하지만 순전히 이곳만 보려고 나선다면 실망할 수도 있어 잘 생각해 볼 문제다. 애틀랜타에서 동부 쪽으로 장거리 대륙종단 자동차 여행을 계획한다면 워싱턴 DC거쳐 남북전쟁 격전지 게티스버그 등을 경유해 올라가면서 들러볼 수는 있겠다. ▶김평식 여행 등산 전문가. 꾸준히 여행칼럼을 집필했으며 ‘미국 50개주 최고봉에 서다’ ‘여기가 진짜 미국이다’ 등의 저서가 있다. 연락처= 213-736-9090 김평식 / 여행 등산 전문가

2021-06-13

[김평식의 신 미국유람] 구비구비 산길 "구름 위 달리는 맛이 이럴까"

블루리지 파크웨이(Blue Ridge Parkway)는 미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최고의 드라이브 길(Scenic Drive Way)이다. 버지니아주의 셰넌도어 국립공원에서 시작해 노스 캐롤라이나주 그레이트스모키마운틴 국립공원까지 이어지는 장장 469마일의 환상적인 산악도로다. 양대 국립공원 사이에 있는 가장 높은 산줄기인 블루리지 산맥의 칼날 위로만 길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탁 트인 양쪽 풍광을 원 없이 만끽할 수 있다. 한국에 비유하자면 백두대간 위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도로를 만들어 놓았다고나 할까. 산길을 운전해 가다보면 수많은 야생화와 온갖 잡새들의 합창소리가 좌우에 있고, 어린 새끼를 데리고 유유히 산책하는 사슴 떼도 자주 볼 수 있다. 아주 운이 좋다면 곰도 볼 수 있다. 차로 일주하는 것도 이렇게 좋은데 직접 땅에 발을 내디디며 파크웨이 주변을 등산이라도 해 보면 여기가 바로 천국이요 극락이 아닐까 싶다. 방문하기 좋을 때는 온 산야에 철쭉꽃이 만개하는 봄과 오색 단풍 창연한 가을 단풍철이다. 특히 이곳의 가을 단풍은 죽기 전에 한 번은 가 봐야 할 풍광으로 꼽힌다. 사람은 강한 척 하면서도 상당히 약하다. 주위 환경이 조금만 달라지면 금방 그 속에 녹아 버린다. 가을 단풍철에 이곳을 찾았던 필자가 그랬다. 장자의 한 구절처럼 오색 단풍의 숲 속에서 마음까지 물들어 내가 단풍인지 단풍이 나인지 모를 정도로 흠뻑 취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블루리지 파크웨이는 1935년 첫 삽을 뜬 이후 온갖 우여곡절 끝에 50여년만인 1987년에야 전 구간이 완전히 개통됐다. 하지만 이 길은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산업 도로가 아니며 유통을 위한 물류 도로는 더욱 아니다. 오로지 일반 시민들의 레저와 여가를 위한 목적으로 만든 도로인데 처음엔 그 효용가치를 놓고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단단히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도로 공사를 처음 시작 할 때만 해도 미국의 대공황이 심각할 때라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주도한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실업자들을 줄여야겠다는 목적이 컸다. 물론 그 이후 꾸준히 확장공사를 했는데 그래도 아직도 몇 개의 터널은 버스 통행이 불가능하거나 겨우 한 대만 지나갈 수 있어 단체 관광에는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또 하나 대단한 것은 보통 국립공원 하면 방문객 안내소가 두세 개, 많아야 서너 개인데 이곳 블루리지 파크웨이엔 전 구간에 방문객 안내소만 15곳이 있고 인포메이션 센터도 2개가 더 있다. 전 구간에 걸쳐 터널은26군데이며 좌우 경치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Look Out Point)도 41개나 있다. 연중 방문객은 1000만명이 넘는다. 469마일의 전 구간 중 백미는 노스캘로라나주 애쉬빌에서 출발해 분(Boon)이라는 마을까지 이르는 100마일 구간이다. 이곳 주변으로는 노스캐롤라이나 최고봉인 마운트미첼을 비롯해 린빌폭포 등의 명승지를 비롯해 곳곳에 민속예술단지, 역사 유적지, 먹거리 등이 산재해 있다. 전 구간을 완주를 목표로 주마간산식으로 달린다면 하루에라도 다 통과할 수는 있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주변 경치를 즐기며 몸도 마음도 재충전하기를 원한다면 4~5일도 모자랄 판이니 생업에서 은퇴한 사람들에게나 어울리는 길이긴 하다. 그렇지만 인생에 나중이란 없다. 여행이란 조금이라도 다리에 힘 있고 가슴 떨릴 때 떠나야 한다. 나중을 기약하지 말고 즐길 수 있으면 즐기시라. 이것이 나이 80을 넘긴 필자가 항상 주장하는 소신이요 철학이다. 아무런 소득 하나 없는 맹꽁이 철학 탓인지 미국 전체가 머리 속에 다 들어와 있지만 손에 든 것은 없으니 속 빈 강정마냥 머리는 풍년인데 입은 흉년이로구나. ▶여행메모 전 구간을 종주하기 위해서는 계획을 잘 설계해야 한다. 애틀랜타에서 가자면 애쉬빌을 거쳐 북상하는 것이 편하겠지만 필자의 경험으로는 그 반대로 달려와도 나쁘진 않다. 방문 시기는 본인 형편 따라 봄이든 가을이든 결정하면 되겠지만 이왕 마음먹고 나서는 보석같은 여행길에 여유가 없으면 어떤 여행도 추억으로 남지 않고 이 좋은 길을 지나가고도 그저 일장춘몽으로 끝난다는 것을 유념하기 바란다. ▶김평식 여행 등산 전문가. 꾸준히 여행칼럼을 집필했으며 ‘미국 50개주 최고봉에 서다’ ‘여기가 진짜 미국이다’ 등의 저서가 있다. 연락처= 213-736-9090 김평식 / 여행 등산 전문가

2021-06-06

[김평식의 신 미국유람] 우당탕 쾅쾅 눈부신 물 줄기…“여기가 바로 선경”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이곳을 와서 보니 언뜻 그 유명한 성철스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달리 뭐라고 수다를 떨고 싶지도 않다. 울창한 계곡 속에 수많은 포말을 만들어 내며 엎어지고 뒹굴며 쏟아지는 물 줄기를 보노라니 별다른 수다나 수식어가 필요 없다. 어떤 말을 갖다 붙여 봤자 오히려 자연에 대한 모욕이요 주립공원에 대한 불경이라는 생각이 든다. 흔히 폭포라 하면 수직으로 떨어지는 물줄기를 연상하겠지만 이곳 아미카롤라 폭포는 729피트 높이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경사진 바위를 따라 이리 저리 갈래를 만들며 쏟아지는 특이한 폭포다. 마치 여인이 목욕할 때 머리 결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줄기 같다고나 할까. 모두 7개의 크고 작은 폭포에서 떨어지는 하얀 포말이 햇볕을 받아 만들어내는 풍광은 그야말로 신비롭고 이색적이다. 오죽하면 원주민 인디언들도 이곳을 아미카롤라, 즉 ‘굴러 떨어지는 물’이라고 불렀을까. 폭포 전망대는 공원 방문자 센터로부터 약 반 마일 정도 포장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나온다. 여기서 잠시 숨을 고른 후 위를 올려다 볼라치면 와~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주변을 둘러보면 콰르르르 쾅쾅 물소리가 마치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합주곡 같다. 전망대로부터 나무판으로 만든 계단식으로 폭포 위까지 올라갈 수도 있는데 총 계단 수가 425개나 되어 올라가면 제법 운동이 된다. 노약자들이나 일정이 바쁜 사람들은 폭포 위까지 자동차 길도 있어 차로도 쉽게 올라갈 수 있다. 폭포 위로 올라가 내려다 보는 전경도 일품이다. 마치 구름 위에 올라와 보는 듯도 하고 한 폭의 선경을 음미하는 듯도 하다. 그러니까 이 폭포는 아래에서도 볼 수 있고, 계단을 밟으며 위까지 올라오며 전 구간을 볼 수도 있고, 또 위에서 아래를 볼 수도 있으니 그야말로 3D 입체에 알짜배기, 꿩 먹고 알 먹고다. 아미카롤라 폭포까지 갔다면 그 유명한 애팔래치안 트레일을 잠시나마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 애팔래치안 트레일은 이곳 폭포에서 약 1마일 떨어진 스프링거마운틴 근처가 시작점이다. 이후 조지아(76마일), 노스 캐롤라이나(96), 테네시(288), 버지니아(550), 웨스트 버지니아(4), 메릴랜드(41), 펜실베이니아(230), 뉴저지(72), 뉴욕(88), 코네티컷(52), 매사추세츠(90), 버몬트(150), 뉴햄프셔(161) 주를 지나 최북단 메인주(281)까지 이어지는데 총 길이 장장 2150마일이나 된다. 1924년 1월 뉴욕 허드슨에서 라마포강까지 처음 20마일의 트레일이 만들어진 후, 1937년 Appalachian National Scenic Trail(AT)이라는 이름으로 전구간이 개통되었다. 이 길은 태평양 연안 PCT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하이킹 코스다. 매년 300만 명 이상이 부분적으로 참여하며 종주에 도전하는 사람도 매년 2000~3000명에 이른다. 하지만 전구간 대장정에 성공하는 사람은 20%가 못 된다고 한다. 아미카롤라 폭포 입구에 있는 트레일 시작점 안내판에는 “트레일이 완공된 1937년 이후 지금까지 종주에 성공한 사람은 모두 8000여명”이라고 나와 있다. 아마 몇 년 전 기록일 터이니 지금은 1만 명이 넘었을 지도 모르겠다. 지난 4월 중순 방문 길에 아미카롤라 폭포를 거쳐 산 정상, 애팔래치안 트레일까지 올라가 보았다. 철판으로 만들어 놓은 트레일 표시가 두 군데나 바위에 박혀 있었는데 마침 한 부부가 종주를 하기 위해 그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6개월 예정으로 대장정에 돌입했다고 한다. 무거운 등짐을 지고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는 그들을 보면서 과연 끝까지 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지만 표정만은 꽤 자신만만해 보였다. 꼭 성공하기를! 그들에게 응원을 보내면서 ‘나도 10년만 젊었으면 도전해 봤을텐데’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 한편으론 아쉬우면서도 그들의 젊음이 몹시 부러웠다. 애팔래치안 트레일의 마지막 종점인 메인주 캐터딘까지 올라가 본 사람으로서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조용히 회한의 발길을 돌리며 푸념의 시나 한 수 읊어 본다. 산을 어디에 손대려 하느뇨 산에 정기 있으매 푸른 기운 솟고 산에 자연 있으매 맑은 물도 흘러 모든 생명 다 함께 사노니 아, 스프링거 영봉이여 아파라치안 등산로여 ▶여행 메모 구글 맵에 Amicalola Falls State Park을 검색해 찾아가면 된다. 주소는 418 Amicalola Falls State Park Rd, Dawsonville, GA 30534. 애틀랜타 둘루스에서 자동차로 1시간 반쯤 북쪽으로 가면 나온다. 또 다른 폭포 명소인 유니코이 주립공원(Unicoi State Park)내 애나 루비 폭포나 금광 마을 달로네가, 독일 정취가 가득한 헬렌 조지아 등도 이곳에서 멀지 않아 당일 코스로 같이 둘러볼 만하다 ▶김평식 여행 등산 전문가. 꾸준히 여행칼럼을 집필했으며 ‘미국 50개주 최고봉에 서다’ ‘여기가 진짜 미국이다’ 등의 저서가 있다. 연락처 (213)736-9090 김평식 / 여행 등산 전문가

2021-05-27

[김평식의 신 미국유람] ‘굴뚝바위’ 정상에 서면 발 아래 천하절경 ‘쫘악~’

침니락(Chimney Rock) 은 노스캘로라이나주 애쉬빌 남쪽의 작은 도시 핸더슨빌 근처에 있다. 핸더슨빌은 필자의 미국 고향이기도 한 곳이다. 40년 전 LA에 살던 필자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이곳에 와서 미국 시민권 시험을 봤고 2주 후에 다시 와서 시민권 선서까지 한 곳이기 때문이다. 당시 핸더슨빌에 살던 조카가 나를 데리고 이곳의 명소라며 침니락을 구경시켜 주었는데 그때는 아무리 좋은 것을 보아도 하나같이 눈에 들어오는 것도 없고 귀에 들리는 것도 없었다. 아마도 이민 초기라 먹고 살기조차 힘들어서 그랬으리라. 침니락이란 이름 그대로 바위가 흡사 굴뚝같이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주립공원으로 지정된 이곳은 침니락 바위 하나의 높이만 해도 315피트이며 해발 높이는 2280피트에 이른다. 침니락을 찾아가자면 꾸불꾸불 고갯길을 돌고 돌아 가야 하는데 공원 입구를 들어선 후에도 바위 주차장까지는 한참을 산길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다시 가파른 계단을 따라 10분쯤 올라가면 성조기가 나부끼고 있는 침니락 정상에 이른다. 생각보다 계단이 가파르기 때문에 노약자들은 바위 속을 뚫어 만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방법도 있다. L자 모양으로 생긴, 굴뚝같이 생긴 바위 속을 198피트 길이의 수평 터널을 통해 걸어 들어가면 엘리베이터 입구가 나온다. 이를 타고 수직으로 20-30층 높이로 올라가면 선물가게와 식당이 있는 곳에 내리게 된다. 이곳을 통과해서 밖으로 나가면 침니락 정상에 펄럭이는 미국 성조기가 한 눈에 들어온다. 정상에 서면 울창한 수풀 너머 멀리 커다란 호수(Lake Lure)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야, 이 맛에 여길 오는구나” 하는 경탄과 찬사가 저절로 나온다. 건너편 쪽으로 눈을 돌리면 웅장한 산봉우리가 연이어 있고 그 밑으로는 맑은 물까지 흘러 이곳이 그야말로 산수경을 두루 갖춘 풍류의 명소임을 말해 준다. 아마 조선 선비였다면 이런 곳에 정자라도 하나 지어 놓고 후학들을 가르치며 남은 여생을 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본다. 캘리포니아 메마른 사막에 살다 보니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이곳 녹색의 향연들을 보거나 사시사철 풍족한 강물이나 넉넉한 호수들을 볼 때가 제일 부럽고 어찌하여 세상은 이렇게도 불공평한가 싶기도 하다. 있는 곳은 넘쳐나고 없는 곳은 너무 없어 온 산야에 나무들이 메말라 하루가 멀다 하고 산불이 일어나니 제 아무리 과학이 제일 발달한 미국도 이런 문제 만큼은 속수무책인가 보다. 침니락 주변으로 짧지만 양질의 등산로도 참으로 많다. 그중 스카이라인 트레일은 450여 계단을 밟으며 올라가 바위산 길을 따라 걷다보면 이곳의 또다른 명소 히코리 너트 폭포 위에 이른다. 이 트레일은 절벽 가운데로 내려오는 클리프 트레일과 연결이 되는데 전부 합해서 1.5마일이다. 말이 1.5마일이지 노약자는 절대로 권할 만한 코스는 아니다. 낙폭이 404피트나 되는 거대한 폭포 아래로 내려오는 코스하며 아래를 내려다 보면 천야 만야 절벽 위를 게걸음을 하며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서브웨이 트레일은 또 어떠한가. 겨울에는 눈과 얼음 때문에 아예 등산로 자체를 폐쇄할 때도 많으니 꼭 확인을 하고 가야 한다. 히코리너트 폭포 위에서 물보라를 맞으며 폭포밑까지 내려오는 등산로는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폭포가 만들어 놓은 담수에 손이라도 잠시 씻고 다시 클리프 트레일로 들어서는데 아래를 내려다 볼라치면 오금이 저려온다. 위를 올려다 봐도 가슴이 벌렁거린다. 글자 그대로 낭떠러지 등산로이다. (현재 클리프 트레일은 폐쇄되어 있다.) 클리프 트레일을 따라 마지막 지점에 오면 이곳의 하이라이트, 풀핏락에서 수직 하강하는 서브웨이 트레일을 만난다. 엄청나게 큰 바위와 바위 사이를 간신히 한 사람 정도 비집고 나무계단을 밟으며 내려오게 되는데 너무 캄캄해서 발아래 계단을 볼수도 없고 얼마를 내려가야 끝인지 불안 공포 조바심 글자 그대로 초조한 순간이다. 지금 같으면 스마트폰의 프레시로 불을 밝히면서라도 내려오지 당시만 해도 핸드 폰의 핸 자도 들어보지 못할 구석기 시대가 아니던가. 서브웨이 속에는 여유 공간이 없어 백팩도 앞으로 메고 내려와야 하기 때문에 앞을 숙여 아래를 내려다 볼 수도 없다. 더욱이 나사못같이 생긴 계단을 철로 만들어 놓았으면 안정감이라도 있었을 텐데 나무 계단에서 삐걱 삐걱 거리는 소리에 신경이 더욱 쓰인다. 가볍게 폭포만 구경하려면 침니락에서 조금 내려와 히코리너트폴스 트레일을 따라 20~30분쯤 걸으면 된다. 경사도 완만하고 주변 경치도 좋아 노약자들도 쉽게 다녀올 수 있다. ▶여행 메모 침니락은 노스캐롤라이나 주립공원이다. 입장료는 16세 이상 성인은 1인당 17달러. 15세까지는 8달러, 4세 이하는 무료다. 애틀랜타에서는 3시간 남짓 거리다. 구글맵에 주소(431 Main St. Chimney Rock, NC 28720)를 찍고 올라가면 공원 입구가 나온다. 방문 최적기는 가을 단풍철이지만 봄 여름도 나쁘지 않다. 애쉬빌에서 멀지 않기 때문에 빌트모어하우스와 함께 당일 코스로 둘러보기 좋다. ▶김평식 여행 등산 전문가. 꾸준히 여행칼럼을 집필했으며 ‘미국 50개주 최고봉에 서다’ ‘여기가 진짜 미국이다’ 등의 저서가 있다. 연락처= 213-736-9090 김평식 / 여행 등산 전문가

2021-05-23

[김평식의 신 미국유람] 세계 최대 개인주택…방마다 명품 보물 가득

미국에 처음 이민 와서 보니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한국에 비해서 다 컸다. 감자나 고구마는 말할 것도 없고 자동차와 집도 크고, 달도 크고 심지어 미국 사람들의 코도 엄청나게 컸다. 이 세상에서 개인 집으로 제일 큰 집 역시 미국에 있었다. 노스캐롤라이나 애쉬빌에 있는 빌트모어 하우스(Builtmore House)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조지아 애틀랜타에서 자동차로 넉넉잡아 4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애쉬빌은 미국에서도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블루리지 마운틴 자락의 소도시다. 마치 동화 속 마을처럼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이어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휴가차 종종 찾곤 했고 퇴임 후 머물 곳으로 고려했을 정도로 매력적인 도시다. 빌트모어 하우스는 그런 애쉬빌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관광명소다. 처음 이 집을 방문하기 전 한국 생각만 하고 개인 집이 커 봐야 얼마나 크겠나 했다. 하지만 막상 가 보고는 내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나를 알게 됐다. 이 저택은 지구 상에서 제일 큰 집으로 기네스북에도 올라 있는 유명한 집이었다. 캘리포니아 중부에 있는 허스트 캐슬을 가 보고도 방만 100개가 넘는 규모에 입이 딱 벌어졌는데 빌트모어 하우스는 거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빌트모어 하우스는 자그마치 250개나 되는 방을 다 둘러 볼 수도 없거니와 일부 개방한 방들을 둘러 보는 동안에도 그저 놀라움과 감탄사만 연발했다. 이 집은 세계 최대의 집을 짓겠다는 야심을 가진 조지 W. 밴더빌트라는 사람이 불과 27세였던 1889년에 짓기 시작해 6년여 공사 끝에 1895년 성탄 전야인 12월 24일에 세상에 공개했다. 철도와 증기선 사업으로 큰 부를 일군 네덜란드계 할아버지 코넬리우스 밴드빌트로부터 물려 받은 유산 덕분이었는데 코넬리우스 밴드밸트는 거액을 기부해 테네시주 내슈빌에 있는 명문 밴더빌터대학을 설립한 바로 그 사람이다. 빌트모어 하우스는 밴더빌트에서 ‘빌트’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보통의 젊은이 같으면 그 많은 유산으로 흥청망청 놀면서 돈 쓸 궁리나 했겠지만 무엇인가 생전에 다른 사람이 해 낼 수 없는 대작을 남겨야 되겠다는 밴더빌트 가문의 안목과 야심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생각이 다르고 마음까지 대범하니 그는 지금 이 세상에 없어도 그의 작품은 남아 이렇게 사람들의 볼거리로 입에 오르내리고 있지 않은가. 대저택 바로 옆으로는 스와나노아 작은 강이 흐르고 있다. 그 주변으로 승마장과 사냥터에 와이너리까지 갖추고 있어 그야말로 중세 유럽 영주의 장원(莊園)을 방불케 한다. 저택 건물도 엄청나지만 야외 정원 식물원과 주차장까지 전부 합치면 대지만 약 8000에이커에 이른다. 한국으로 치면 여의도의 4배 면적이다. 4층으로 된 저택 안에는 수영장과 볼링장까지 갖춰놓았으니 19세기 말인 그 당시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규모나 시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1895년 당시 일반 주택에서는 흔히 볼 수 없었던 수세식 화장실도 눈길을 끈다. 또 보통 일반 집에는 한 두 개의 벽 난로가 있는 것이 고작인데 비해 이 집은 본채에만 65개의 벽난로가 있고, 각층마다 소장하고 있는 세계적인 명화와 가구 집기 등은 하나 하나가 전부 골동품이라 금액으로는 도저히 환산할 수가 없다고 한다. 건물 내부를 둘러보고 난 뒤 야외 정원도 빠뜨리지 말아야 한다. 40개의 인물 조각상들이 수많은 꽃 향기와 함께 방문객들을 맞고 있으며 드넓은 화단과 무대시설까지 갖추고 있다. 이런 곳에서 장미나 목련, 체리 또는 튤립꽃이 만개했을 때 연주되는 야외 라이브 음악은 방문객의 영혼까지 뺏어가고도 남는다. 야심만만했던 젊은이 조지 W. 밴드빌트는 이렇게 어마어마한 집을 지은 3년 뒤인 1898년 이 집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렇다면 그는 이 집에서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을까. 당연히 그 많은 재산과 좋은 집을 지어 놓고 남 부러울 것 없이 행복하게 살았어야 했는데 불행하게도 슬하에 딸 하나만 남기고 52살 한창 나이인 1914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19년 동안의 짧은 행복이었다고나 할까. 밴더빌트가 죽고 난 뒤 남겨진 딸 혼자서는 이렇게 큰 집을 관리할 수가 없어 애쉬빌시가 운영을 맡아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그런 걸 보면 돈 없는 서민의 넋두리 같지만 조그마한 아파트에서 된장국만 끓여 먹고 살더라도 오손도손 마음 편한 게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는 생각도 든다. ▶여행메모 빌트모어 하우스는 빌트모어 에스테이트(Biltmore Estate)라고도 불린다. 입구에서 저택까지 들어가는 데도 차로 한참을 달려야 하고 저택, 정원, 와이너리 등 구석구석을 다 둘러보려면 하루가 부족할 정도다. 입장료는 1인당 65달러부터이며 와인 시음까지 포함되어 있다. 단 와인 시음은 인원이 제한되어 있으므로 와이너리에 사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 주소= 1 Lodge St, Asheville, NC 2880 애쉬빌까지 간다면 미국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인 블루리지 파크웨이를 경유해 노스캐롤라이나 최고봉인 마운트 미첼 주립공원까지 둘러보는 것도 좋다. 블루리지파크웨이는 버지니아주 셰넌도어 국립공원 남쪽 웨인스보로에서 시작해 노스캐롤라이나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 국립공원 동쪽 체로키 마을까지 이어지는 460여 마일의 산악도로다. ▶김평식 여행 등산 전문가. 꾸준히 여행칼럼을 집필했으며 ‘미국 50개주 최고봉에 서다’ ‘여기가 진짜 미국이다’ 등의 저서가 있다. 연락처= 213-736-9090 김평식 / 여행 등산 전문가

2021-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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